UPDATE : 2020.7.2 목 16:31
상단여백
HOME Column
방관에 대한 후회



아침 회진을 끝내고 전공의들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아래연차 선생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선생님, 그 얘기 들었어요? 그 인턴 선생 있잖아요. 우리 신경과 지원했다가 중간에 내과 하겠다고 바꾼 사람.”
“아, 걔…… 왜요?”
“자살했대요.”


예기치 못한 이야기에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에요, 자살하다니. 지금 내과에서 수련 중일 텐데?”
“오늘 출근을 안했대요. 연락을 해도 안 받고…… 그런데 아침에 응급실에 DOA(dead on arrival 도착 시 사망상태)로 남자가 한 명 왔는데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다들 몰랐대요. 신분증 확인해 보니 글쎄 그 선생님이라지 뭐에요.”


소름이 돋았다.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었을까. 하지만 도대체 왜? 레지던트가 된 지 1주일정도 밖에 안됐기 때문에 내과 수련과정이 힘들어서 그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쯤 내과 의국 분위기는 암울하겠구나.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섰다.

“그런데요, 평소에도 좀 이상한 점이 있었대요.”
“어떤?”
“뭐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는 소리를 주변 사람들한테 하고 다녔다던데요? 우울증 같은 거 아니었을까요?”


흐음. 그렇군. 대수롭지 않게 한 귀로 흘려버리려던 나는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에 그만 멈춰서고 말았다.

“아!”

탄식을 내뱉은 나를 사람들이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듯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그런 거였던 건가?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 아냐. 아무 것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참담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녀석은 대학교 후배였지만 조용한 성격이라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처음에 신경과를 하겠다며 인사를 왔을 때에도 ‘이렇게 비실한 녀석이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 데다, 연초였기 때문에 나중에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많아 좀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중간에 갑자기 신경과를 포기하고 내과를 지원하겠다는 말에 녀석은 오히려 마이너스 점수를 얻게 되었다. 다만 나는 녀석을 혼내지도 않았고, 다시 신경과를 고려해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할 전공을 정하는데 누군가가 개입하는 건 옳지 않다. 그렇기에 녀석의 판단을 존중했다. 그래도 어찌되었건 마냥 예뻐 보일만한 상황은 아니긴 했다. 병원에서 스쳐 지나갈 때마다 녀석은 내 눈치를 살폈고, 나는 그게 불편해서 부러 못 본 척 지나칠 때도 많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어쩌다보니 녀석과 둘만 엘리베이터에 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미 내과 레지던트에 합격한 녀석과, 녀석이 버린 과의 레지던트인 나. 조금은 불편한 상황이었다. 잠시의 어색한 정적을 깬 것은 녀석이었다.

“형, 저 요즘 가슴이 답답한데 왜 그럴까요?”


이 질문만 생각하면 지금도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가 살아생전, 남들에게 건넸다던 그 운명의 질문을 나에게도 던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이 녀석이 심장내과 전공도 아닌 나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할까 의아할 뿐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팔피테이션(palpitation 자신의 심장고동을 느끼는 것)이 있어?”
“예. 요즘 들어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왜 그럴까요?”


덜컹.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어차피 내 전문분야도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해 줄 말이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말했다.

“글쎄, 심전도라도 찍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찍어 봤어?”
“심전도요? 아뇨…….”
“동기한테 한 번 찍어달라고 해봐. 부정맥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 뭐.”
“예…….”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나는 의국을 향해 걸어갔다. 그 때 닫혔던 그 엘리베이터의 문이 그와 나 사이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그를 삶과 단절시키는 문이었다니. 덜컹. 그것이 내가 본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녀석과 아주 친한 선후배 관계는 아니었다.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힘들어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을 택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모른다.

다만, 그가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나였다는 사실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내가 녀석을 끌고 가서 심전도에 이상이 없으니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술 한 잔 하면서 녀석의 고민을 들어줬더라면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술도 못 마시는 내가 그리 친하지도 않던 녀석과 그럴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녀석을 방관했던 환경 중 내가 있었다는 죄책감은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정말로 힘들어서, 누군가 손을 잡아줬으면 하며 슬퍼하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그 손들을 모두 흘려보냈을 것이다. 몰랐던 것일까? 어쩌면 귀찮아서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모른 척 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 손을 잡아 줬더라면 그 사람의 삶은 뭔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중국에서 갑자기 쓰러진 노인이 있었는데,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아 몇 시간째 방치되다가 그만 치료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었다는 사연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누구도 노인을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한 그를 방관하며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사람이 그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 또한 그랬던 것은 아닐까. 녀석을 방관하며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마음이 아프다.

권준우  iniainia@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준우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