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만의 약 봉다리를 만들었다.

진통제
항구토제
설사약
저리는데 먹는 약
수면제
변비약
...

이런 약들이 내가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처방하는 약들인데
새로운 약 처방, 관련된 설명을 할 때마다
컴 화면을 새로 띄워서 약 사진을 보여주는데 시간이 걸려서
오늘은 맘먹고 병동 순례를 하였다.
병원 평가 후라 병동에 남은 약들이 없다.
(평가 기준 상 남는 약은 약국에 반환해야한다. 병동에서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그래도 종양학과 특성상 임종하시는 환자분들의 자가 약이 병동에 남아있거나 가족들이 필요한 환자에게 주라고 남기고 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약들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 병동을 돌기로 했다.)
암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이상의 먹는 약들을 구비했다.
바쁘게 일하는 간호사들에게
남는 약 좀 있냐며 귀찮게 해서 약들을 1알씩 구비하였다.

내가 환자에게 처방하는 형태로 약봉다리를 만들어서
외래에서 환자가 질문하면 이 약봉다리를 꺼내놓고 이약은 뭐고 이약은 언제 먹고 그런 거 설명하려고 한다.
무대에 서기 전 소품을 마련한 배우 같은 심정이다.
내일 외래에서 이 소품을 써먹을 생각을 하니 설레기조차 한다.
아직 몇 개 구비하지 못한 약들은 차차 모아야지.
항구토제로 드리는 진정제 계열의 약은 구하기가 어렵다.
항암치료 중 방광염이나 구내염이 심할 때 처방하는 항생제도 구하기가 어렵네...
음...
다 하고 보니 아무래도 약봉다리가 별로 근사하지 않다.
문방구에 가서 근사한 케이스를 하나 사야겠다.

사실 짧은 외래시간에서
약 설명까지 하기는 역부족이다.
약 하나 집어 들고, 이 약 먹을 땐, 이 약 같이 잡수세요. 뭐 그 정도 설명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
그래도 뭔가 소품을 준비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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