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응급실에 왔다 간 환자.
환자가 힘들어서 응급실 왔다가 루틴 랩을 다했다.
피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소변검사...
큰 문제없고 증상도 좋아져서 응급실에서 입원하지 않고 기본 사항만 체크하고 귀가하셨다.
그리고 오늘 입원하였다. 항암치료 해야 하니까.

인턴은 별 생각 없이 신환 오더를 다 냈지만
난 EMR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필요 없는 랩을 다 지운다.
소변검사, 심전도, 엑스레이... 피검사 중에서도 화학검사는 별로 달라질게 없는 환자.
환자가 필요 없는 검사 하는 거 싫고 불필요하게 찔러서 채혈하는 것도 싫다.
그래서 내가 검사를 다 취소했다.

MRI PET-CT 등등 대학병원의 고가검사.
암환자는 5%만 내면 되기 때문에 사실 경제적으로 큰 부담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불필요한 검사는 할 필요 없다.
내가 환자에게 항암제 설명하고 치료 예후 설명하고 가능한 합병증 설명하고 치료 시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1시간은 진료 수가가 없다.
그러므로 내 진료 '성적표'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돈이 되는 검사를 하는 게 좋다.
내 지적 노동의 성과가 돈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돈 되는 뭔가의 검사를 하는 것은
나 힘도 안 들고
환자도 뭔가 믿을만한 검사를 했다는 거에 대한 안도감도 준다.
그러나 모든 검사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지 않으며
검사마다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영상 검사나 혈액검사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환자들은 고가의 검사를 하면 더 나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쉽다.
어떤 검사를 '하는 것'보다 '안하는 것'에 더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

환자가 어떤 증상을 호소할 때
과연 이걸 지켜볼 것이냐
검사를 할 것이냐
결정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환자를 위해,
전체적인 의료비용효과를 고려할 때,
사실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판단과 결정을 위해서는 의사로서 숙련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도 하기 쉬운 건, 마음 편한 건
검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심평원은 검사에는 비교적 후한 것 같다. 별로 삭감하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 암환자에서는.
이런 이해관계가 맞물려 검사를 자꾸 하는 방향으로 간다. 이런 문화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보이지 않게 환자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고민하는 것에는 노동의 대가가 부여되지 않고
그냥 검사 처방하는 게 대가로는 효율성 100% 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본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다.

이번 달 진료실적을 메일로 받았는데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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