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반의 할아버지는 몇 달 전부터 배가 부글거리며 변보기가 힘들고 음식을 잘 먹을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누우시라고 하고는 배를 만져보니 특별한 소견은 없는데 복부 X-선 사진을 찍어보니 외과의사의 소견 상 심상치 않은 느낌이 와서 일단 CT를 찍어보자 권유했습니다. 마침 보호자들이 입원을 원하고 있어 바로 입원과 동시에 다른 추가적 검사들을 해 본 결과, 진단은 직장암이었습니다. 암덩어리가 직장 내강을 완전히 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변보기가 힘들었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충분히 부피가 있어보였습니다.  

환자는 입원을 하여 일단 수액치료를 포함한 일반적 처치와 함께 내시경 등의 수술 전에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고 수술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보호자들에게 환자의 상태, 앞으로의 일정, 예후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나름 명색이 대장항문전문의라는 입장에서 '나도 이제 암수술을 하는구나' 하는 기대감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전공의 전임의의 수련이라는 것은 암수술 및 이에 필적하는 고도의 수술에 익숙해지고 학문적으로도 일상 개념화하는 과정이었기에 수련과정을 마치고 나서도 외과의사는 '자신이 집도하는 암수술'이라는 로망이 항상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환자도 수술 전 기력을 어느 정도 찾았고 준비도 거의 다 마쳐가는데 보호자들이 절 찾아옵니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거나 서울에 가서 수술 받게 해 드리려고요.'

마음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이젠 익숙해져버린 일이었습니다. 지방의 2차병원에서 암수술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보편적인 생각으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어색한 일이 되어버린 것도 현실입니다. 한 때에는 지역의 수많은 의학적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던 나름 규모 있는 병원이었지만, 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버린 병원들 사이에서의 물량경쟁과, 수도권으로의 의료집중화가 사람들의 의료에 대한 인식마저도 변화시킨 결과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의사는 오랜 시간의 경험과 충분한 수련을 하고 나와도, 결국에는 아주 새롭기까지조차 한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진료행위와 수술을 할 수 밖에 없고, 의사 개인으로는 일말의 실망감과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기분은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심화되는데,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암수술은 서울 가서 해야만 된다. 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고 간단한 수술조차도 서울선호의 경향을 종종 볼 수 있어 지역의 가장 규모 있고 실력이 좋다는 병원들조차도 허탈감을 고백하는 일을 가끔 보게 되곤 합니다. 나름 개념과 요건은 갖추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한계를 느껴야만 하는 개개 의사들의 허탈감을 단순하게 극복되거나 조치되어야 할 문제로 생각하기에는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실제적으로 의욕적인 개개 의사들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로망과 허탈감 속에서 의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현실이긴 하지만, 지방 중급병원의 외과의사로서 있으며 느끼는 바로는 개인의 허탈한 현실 이면에, 간과되고 있는 의학적 행위들이 수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과 로망에 걸맞은 원대함보다는 사소함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간단한 것들, 그리고 응급상황에서의 신속한 처치력이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수술력,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신경을 써 주어야 할 부분들, 수술 후의 상태와 경과에 대한 그때그때의 설명과 관리들..  큰 수술을 하다보면 일정에 시간에 쫓겨 사소한 문제들이나 그다지 의미 있는 처치를 요하지 않는 합병증과 경과상의 문제들엔 무관심해지기 마련인데, 외래에 있다 보면 그런 문제들 때문에 수술 후 경과가 지연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아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자주 보곤 합니다. 일을 해야만 하는 환자들의 경우엔 더더욱 안타까워지죠.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의학적 치료에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종종 중요한 일이 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장항문 전문의라는 간판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환자들을 상대하다보니 전공분야보다는 오히려 화상환자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들에게 화상의 상태, 앞으로의 경과, 치료방침, 관리방법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때로는 환자 자신이 화상을 다 치료할 때까지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으로 받아들이기에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처의 상태에 따른 그때그때의 조치도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하죠.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관리는 수련기간 중에 완전히 배워나가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사소하기에 참 다양해서이기도 하지만, 수련병원이 크면 클수록 정신없이 바쁜 일정으로 주로 큰 수술에 매진하고 관심 가지게 되어 수술 후 상처관리나 드레싱 등의 문제에는 관심이 적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병원에서는 상처를 주로 관리해주고 임상적으로 도움과 보조를 해 주는 전문간호사제도를 도입하지만, 수련의 원칙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제도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진단과 치료, 또는 수술과 술 후 관리에 환자를 직접 보고 관찰하고 감각을 가져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수술만 하고는 이후의 관리를 주로 임상간호사에게 일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하고 가벼운 문제들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 채로 수련을 마친 의사는 큰 병원에 남아 하던 수술을 지속하지 않는 한, 스스로 익숙해질 때까지 버둥거리면서 허탈감만 배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런 광범위한 사회적 경향, 외과의사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을 포함한 수많은 의사들의 기분과 현실을 간단히 단정하고 설명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문제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가지다 보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2차 의료기관의 나름의 암담한 현실문제도 거론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의사 개인의 입장에서 로망에 대한 미련에 밀려 현재의 입장에서 신경 쓰고 돌보아야 할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일종의 되새김질입니다. 그리고 전문의라는 타이틀에 목이 맨 채 생활하다가 나와 느끼게 되는 거리감과 허탈감에 대한 분명한 인식입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게 복잡한 만큼, 그 안의 의료현실도 만만치 않게 복잡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의료라는 것은 당장 내 앞의 불편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 어떤 사명의 일이기도 하기에, 개인의 욕심만으로 의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의사의 역할에 인문 사회적 사명이라는 것을 추가하고 싶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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