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학력고사시절, 시험을 보고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대학원 시험을 4번 보았다. 석사 2번 박사 2번 (말 못할 사연이 길다)
그 사이에 과정별 논문제출자격시험, TOEIC, TOFLE, TEPS 등등의 영어시험도 여러 번 보았다.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 전에는, 먹고 살 걱정에  취직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취직시험도 몇 군데 봤다.

2000년 이후
의과대학 입학시험을 보고 의대생이 되었다.
수백 번의 시험을 쳐서 매년 겨우겨우 진급을 하였다. 몇 날밤을 세웠던가.
그리고 의사국가고시를 보고 의사가 되었다.

인턴이 되기 위해, 내과전공의가 되기 위해 필기시험도 보고 면접시험도 보았다.
내과전문의 시험을 보고 내과 전문의가 되었다.
하필 내과는 세부분과가 있어서 나는 혈액종양내과 분과 전문의 시험을 보아야 했다.

운전면허시험을 (실기는 한 번에 합격했으나!) 필기에서 2번 떨어져봤는데
어떤 시험이든 떨어지면 진짜 기분이 나쁘다. 시험이란 자고로 반드시 합격을 해 주어야 한다.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얼마나 좋았는지 합격통지서를 쥐어들고 잠실 탄천주차장을 단숨에 내달린 기억이 생생하다.

내과전문의시험도 그렇고 분과전문의 시험도 그렇고
떨어질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떨어지면 명예실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합격을 해도 명예가 실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어제 본 분과전문의 시험은
면접에 구술시험이 있는데, 이때 헛소리를 하거나 대답을 잘 못하면 두고두고 소문이 따라다니다. '누구누구는 그것도 대답 못했대. 웬일이니...'

지난 20년간 이렇게도 시험을 많이 쳐본 나는 사실 시험에 대한 민감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시험을 눈앞에 두고도 별로 초조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 평소 내가 알던 대로 내 실력대로 결과가 나오는 거지...
떨어지면 실력이 없는 거 아니겠는가... 받아들여야지 뭐...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자.
뭐 그런 자포자기, 좋게 보면 느긋한 마음이 되어 있다.

그러나 시험은 시험, 어제 막상 시험장에 가니 떨리기는 떨렸다.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귀가 쫑긋, 어라? 내가 모르는 말을 하네? 저게 중요한 건가?

특히 구술시험을 보러 들어갈 때는 더욱 그랬다.
면접 선생님들은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다른 병원의 혈액종양내과 교수님들.
인사도 제대로 드려본 적이 없는 선생님들이시다. 그런 선생님 앞에서 면접을 하게 된 것이 영광이라고나 할까.

조리 없이, 초점 없이 대답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한 교수님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자네 레미제라블을 읽어봤나? 레미제라블의 핵심 주제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가난한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가 걸렸는데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음... (식은땀,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나네) 생각이 안날 때는 헛소리를 하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친절하신 선생님이 먼저 말씀을 꺼내신다.

"나는 '용서와 사랑'이라고 생각하네. 이제 진짜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되는 자네가 이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바라네."

"그리고 작년 말 JCO-종양학 저널 중에 가장 권위 있는 저널- 편집장이 꼭 읽어야 할 논문 세 가지를 추천했는데 뭔지 아나?

우물쭈물...

'그 저널은 ***, ***, ***에 관한 것들이니 꼭 읽어보기 바라네.
그리고 분과전문의가 된 것을 축하하네."

내 자질의 부족함을 혹독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믿고
테스트가 아닌
원로 선생님으로써 좋은 말씀 한 구절을 마음에 심어주시려고 하신 것 같다.

지난 수십 년간
신약도 없고 돈도 안 되는 불모의 암 치료 영역에서
열악한 한국 의료의 현실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환자에 대해 고민하며
먼저 길을 걸어가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리고 싶다.

주말 오후, 집안 어딘가에 천대받고 처박혀 있을 장발장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