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한 일주일 전부터 홍삼성분의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푸하하 하며 웃는 분들이 대거 계실 것 같다)

친애하는 한 선생님께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엄마가 몸에 좋다며 먹으라고 했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거다. 그런 거 안 먹어도 현재 영양 넘치는 게 문제라며.

근데 이걸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선생님께서 택배로 손수 보내주시니 솔깃하다.
편지까지 동봉해주신 그 정성으로 인해 placebo 효과가 40% 이상 약효를 올리는 것 같고, 피곤함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보셨다는 선생님의 코멘트로 인해 2알 먹자마자부터 잠이 안 오는 것 같다.
(나의 얄팍한 귀여!)

의사들이 너무 영양의학에 소홀한 것 같다는 말씀에 백분 동의한다.
나도 잘 모른다.
영양까지 신경 쓰기에
의사는 병에 매몰되어 산다.

실험실 접시에 암세포를 키운 다음 인삼이나 홍삼을 투입하면 암세포가 죽는다. 이것은 여러 번 반복된 실험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이걸 동물모델로 만들어서 반복하면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실제 사람에게 투여했을 경우에는 원래 기대한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약효를 입증하는데 실패하기를 몇 차례. 아직까지 인체대상의 임상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혹은 있다하더라도 임상연구의 세팅 자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재평가 혹은 재연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기전으로 원래 약제의 약효가 발휘되는 것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사람 몸이라는 게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기전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한 측면에서는 분명 항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다른 기전과의 관계 속에서 효과가 상쇄되거나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환자들에게 내가 설명하는 방식, 즉 홍삼 먹어도 되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홍삼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 내가 홍삼정을 먹기 시작했다.
성분을 보니 다양한 비타민이 같이 들어있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는 내게 나쁠 것 없는 성분들이다. 이걸 먹는다고 나의 피곤함이 좋아질까 의문스럽지만, 일단 추천해주신 선생님의 경험담과 연륜을 믿기에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피곤한 이유는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 밤늦도록 궁싯거리기, 필 받으면 몰아쳐서 밤늦은 시간까지 잠 안자기, 비효율적 업무습관, 잦은 회식 등이 주된 요인이다. 그러므로 홍삼정이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해도 나의 이런 생활패턴을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주제는
음식과 각종 식이,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의학을 잘 아는 의사가 된다면
환자들에게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영양학이 필요하지만
우리 암환자들에게는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 하는 거나 잘 해야지, 또 욕심내서 뭘 공부하려고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아무리 늙어도 새로 배우고 공부하는 게 의사의 사명이 아닐까 싶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암기가 맞은 건지 모르겠다)
배우고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사실 그동안 공부하면서 아주 즐거웠던 적은 별로 없는데
공부한 걸 환자에게 잘 써먹을 수 있다면 그건 큰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올해는 일단 시작하지 말고 내년에 시작해야지.
원래 올해 내 목표는 블로그였으니까 올해는 블로그를 잘 유지하고
내년에 영양의학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오랜만에 사람다운 결심을 해 본다.
오늘 외래에는 사실 슬픈 일이 많았는데
새로운 결심을 함으로써 그런 일을 잊고 씩씩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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