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산 환자가 결국 몸 상태가 나빠지면서 입원했다. 그분을 처음 뵌 것이 2008년 8월인데 간 전이가 워낙 여러 군데여서 수술은 못하고 화학치료만 해왔다. 수술 없이 화학치료만으로 버틴 것으로 치면 3년은 대단히 오래 사신 것. 그러나 이제는 한계가 온 듯하다. 황달과 장폐쇄 증상이 겹쳤다. 대장암이 커지면서 장폐쇄 증상이 일어나 스텐트를 넣은 것이 벌써 2009년 겨울이니 일 년 반은 스텐트로 견뎌내신 셈이다. 언젠가 스텐트 안으로 종양이 자라나와 또 막힐지 모른다고 말씀드린 것이 3주쯤 전인데 벌써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CT를 보니 완전히 막히지는 않은 것 같아서 관장을 해보라고 했는데... 잘 뚫릴지 모르겠다. 수분은 다 흡수된 후 딱딱하게 된 변이 좁아진 장에 끼어있으면 관장으로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정 안되면 소화기내과 선생님께 부탁해서 죄송하지만 내시경으로 보고 좁아진 종양부위에 딱딱한 변이 끼어있으면 좀 꺼내달라고 할 셈이다. 꺼내면 퍽 하고 가스와 물이 줄줄 나올 것 같은데 좀 죄송하다. 종양내과의사는 이렇듯 환자의 주치의이면서 직접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부탁만 하고 다니므로 항상 굽실거려야 하지만... 그래도 손에 물은 별로 묻히지 않아 좋다.

보험적용이 되는 표준약제에 다 내성이 생겨 더 쓸 약이 없다고 선고한 것은 스텐트 삽입 시술을 하였을 무렵, 즉 일 년 반 전이었다. 표적치료제를 100% 본인부담으로라도 써볼 생각이 있으시냐고 여쭤보았었는데 한 달 600여만 원의 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려우셨고, 혹시 표적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겠노라고 약속을 했었는데 다행히 작년 6월경에 그런 기회가 생겼다. 그러고선 올해까지 열 달 정도 표적치료제로 잘 조절이 되던 상황... 결국은 나빠지긴 했지만 그 약이 아니었더라면 작년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올해까지 약 일 년 정도의 시간을 벌어준 것이 표적치료제이다. 그 시간은... 가족과 환자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렇게 소중한 시간인지 잘 모르셨을 수도 있다. 투병을 오래 하실수록 본인 상태에 대해서는 자꾸 잊고 싶기도 하고, 가족들도 처음 암 진단 당시에는 놀라고 신경도 많이 쓰지만 점점 항암화학치료가 일상이 되어가면서 관심도 적어지고 자녀분들 같은 경우는 부모님의 치료 진행상황에 대해 계속 신경을 집중하고 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매우 당황해하면서 병원으로 달려오는데 의사로서는 결국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뿐인데 좀 답답할 때도 있다. 이분의 가족들은 어떨지... 부인께서는 종종 같이 오셔서 설명을 드렸었는데 자녀분들은 좀 당황하실 듯도 하다.

이 글을 갑자기 두서없이 써내려간 이유는... 나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표적치료제를 잘 권유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환자같이 임상시험참여라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약제 및 진료비, 교통비 지원까지 되기 때문에) 적극 권유를 드리지만... 왠지 제약회사의 판촉직원이 된 듯 한 느낌도 있고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비용대비 효과라는 것이 별로이기 때문에, 완치되는 약도 아니면서 마지막까지 가산을 탕진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삼약침 같은 데 수천만 원을 소비하는 환자들을 보면 차라리 비싸더라도 효능이 검증된 표적치료제를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어떤 대체요법과 한약제도 3천-5천만 원으로 일 년을 더 살 수 있게 만들어 드릴 수 없다.

사실 고액의 치료비 지출이 의사의 세 치 혀에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 다르고 어 다른 뉘앙스의 차이가 환자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현실을 잘 알고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표적치료제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환자들로 하여금 엉뚱한 치료에 돈을 낭비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면 차라리 비싸더라도 검증된 치료를 받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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