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호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환자에게 해당되는 모든 통계적 수치들이 우리 환자에서만은 예외가 되기를 바란다는 바램을 적어주셨다.

나도 그렇다.
환자에게 마음이 갈수록
환자 삶에 굴곡이 많을수록...
평균보다는 예외에 기대를 건다.
나는 가끔 그런 예외의 환자를 보기도 하니까...
그러므로 함부로 비관적인 미래를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의사로서는 별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중요한 것이지만
의사로서 환자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것은 더 좋지 않다고 되어 있다.

나는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일단 실력이 좋고 똑똑해야 한다.
항암제를 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최신 지견들을 잘 챙겨야 하고
약제의 부작용과 효과를 잘 저울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치고 지쳐가는 환자의 마음을 잘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치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므로.
항암치료는 치료적 동맹자의 관계가 중요한 것 같다.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간다. 내 마음만으로는 다 안 되는 걸 깨닫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게으르고 뻔뻔한 그러나 간절한 나의 바람을 들어주실 것에 믿고 매달린다.

하루를 막 살다가도
현실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삐딱하게 굴다가도
이런 간절한 환자의 눈빛, 보호자의 외침을 들으면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내가 이런 걸로 분개할 때가 아니라고...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힘들고 절박한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내가 가진 능력의 수백 배 힘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앞뒤 돌아볼 때가 아니라고...

외래 예습을 하면서 CT를 미리 열어볼 때
사진이 뜨는 것을 기다리는 매 순간
나는 마우스를 꼭 잡는다. 오, 제발...
이번만은 좋은 효과가 있기를 외치며...
그래서 내 환자들에게 숫자와 통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미래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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