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일부터
난 월화수목금 매일 외래를 보게 될 예정이다.
아직은 목요일 진료가 없다.
목요일은 미뤄둔 많은 잡일을 처리하고 각종 미팅,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환자들이 다른 과 진료 보는데 나랑 같이 보는 게 편리하다며 목요일에 같이 봐달라고 요청하시면 난 그냥 진료를 본다.
내 진료실이 없기 때문에
일반 진료실을 이용하거나
진료가 일찍 끝난 다른 방을 이용하거나
진료실이 아닌 공간을 이용할 때도 있다.
대학병원이라는 곳이
한번 접수하고 돈 내고 기다렸다 진료하고 또 돈 내고 검사예약하고....
여러 과를 봐야 하는 환자들은 미칠 노릇이다.
난 그래서 가능하면 편의를 맞춰드리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성의와는 관계없이
내가 이런 식으로 진료하면 외래 간호팀이 힘들다.
자꾸 연락해야 하고
다른 교수님 진료를 담당하고 있어서 바쁜데 나까지 과외로 지원하는 게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나도 진료를 연속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연락받고 가서 환자보고 돌아와서 딴 일 하다가 또 연락받고 가서 환자보고
이렇게 되기 때문에 일의 리듬도 끊기고 여간 어수선한 게 아니다.
난 그래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다.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병원 오는 게 큰일이라 도와드리고 싶다.

오늘도 첫 항암치료를 하고 입 통증이 심해 할머니가 오셨다.
74세.
70세가 넘는 분들께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해서 그냥 명함을 드린다.
뭔 일 있으면 전화하시라고...
3일전부터 할아버지가 하루에 10번씩 전화한다.
입이 아프다고.
병원에 오셔서 진통제 맞고 수액 맞고 입원하시라고.
그런데 다인실 병실 아니면 입원 안하신다고 한다. 비싼 방 쓰면 자식들한테 미안하다고.
그리고 전화로 아프다고 계속 우신다...

결국 오늘 눈물바람으로 이 비속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할머니는 고혈압 당뇨 뇌졸중 위암수술 담당수술 부정맥의 경력이 화려하시다.
그래도 다 낫게 끝까지 열심히 치료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엉엉 울면서 치료 안 받고 죽고 싶다고 한다. 너무 아파서.
항암제 성분 중에 구내염이 심할 수 있는 약제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통계적으로 천명에 한명 정도 이 약제를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효소 부족으로 약제를 대사시키지 못하니 체내 농도가 높게 작용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구내염과 통증을 심각하게 겪게 된다. 이 할머니도 그런가 보다.
미어터지는 응급실에 전화해서 할머니 겉보기에 멀쩡하다고 절대 돌려보내면 안 되고 꼭 입원시켜주고-비싼 방이라도-, 진통주사 연결해달라고 레지던트에게 당부한다.

오늘은 이렇게 힘들고 아픈 환자들이 5명이 왔다.
한 시간에 한두 명이 띄엄띄엄 오니
나는 내 방과 외래를 왔다갔다, 심지어 본관도 왔다갔다 정신이 없고 12시도 안 지났는데 벌써 기운이 빠진다. 월화수목금(토) 외래를 보면 과연 나는 날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큰일이다.

그래도
난 내 환자라면 누구나 특별대우를 해주고 싶다.
특히
노인들.
전이성 환자들.
오래 아프고 지친 환자들.
그들에게 항상 특별대우를 해주고 싶다.
이 비를 뚫고 나를 만나면 뭔가 해결될 거라고 믿고 온 것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