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어머니와 20대 따님이 밤새 심한 복통으로 아침부터 병원을 찾았습니다.  어머니는 심한 구역질과 구토를, 그리고 부글거리고 장이 꼬이는 듯 한 통증을 호소하였고 따님은 설사를 수차례 하고 역시 배를 아파합니다. 열은 없고...진찰을 해 보니 수술을 해야 하는 급성복증은 아닙니다. 어제 뭘 드셨냐고 했더니 연어샐러드를 같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이 오신 아버님도 같이 드셨는데 아버님은 그야말로 멀쩡합니다.

뭐...같이 드셨다고 같은 증상이 나타나야하는 법은 없으니...일단은 드신 연어샐러드에 의한 식중독으로 판단하고 (웬만하면 수액은 안 드리지만 워낙 심하게 아파하시고 어머니는 아무 것도 못 드시니) 수액에 진경제를 섞어 맞기로 합니다. 2시간 후쯤...이제 좀 덜 아프신가 해서 주사실에 들렀더니 따님은 조금 낫다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얼굴이 찌푸려져 있습니다. 많이 아프신가 봅니다. 그래도 일단 수액은 다 맞고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3시간 후 수액을 다 맞으셨다고 하셔서 진료실로 환자분들을 불렀습니다. 아직도 많이 아프시다는 말씀에 조금 의문점이 생깁니다. 아직도? 그리고 아픈 양상이 조금 이상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아팠던 양상을 되짚어보면서 질문과 대답을 하는데...응? 어제 드셨던 연어샐러드가....제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훈제연어가 아니라 연어회랍니다. 알래스카에서 공수를 해 온....-_- 혹시...혹시..고래회충증? 다시 물어보니 음식을 드신 후 아프기 시작했을 때의 시간도 매우 짧고...음음...아무래도 고래회충증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이걸 증명하고 치료하자면 내시경검사를 해야 하는데 내시경검사가 그리 쉬운 검사도 아니고...

(고래회충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한 글)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설득해서 먼저 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증상이 좀 더 심하고..그리고 일반내시경검사도 받아보신 적이 있다고 하기에 말이지요. 내시경검사 시작....위 점막은 띵띵 부어있어서 고래회충증이 분명해 보이는데 막상 기생충은 안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환자분이 워낙 잘 협조해주셔서 위주름 사이사이를 잘 살필 수 있었지요. 어! 발견했습니다. 싱싱한(?) 놈이 한 마리 또아리를 틀고 있군요...^^ 조직 검사하는 겸자로 제거해 드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따님도 같은 병일 가능성이 높지요. 따님은 내시경검사를 무서워해서 수면내시경으로..아! 따님 위에서는 무려 3마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연락을 해 보니 어머니는 증상이 완전히 없어졌고 따님은 아직 좀 아프다는군요. 어쩌면 소장까지 들어간 기생충도 있을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어제보다는 낫다는군요....^^

정말 다행히 진단을 할 수 있었고 그리고..원인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경우였습니다. 그렇지만..한편으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바빠서 수액을 맞고 그냥 환자들을 보냈다면...환자분들은 마냥 아팠을 것이고...저는 진단을 잘 못 한 돌팔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진단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문진을 다시 하고 환자분과 얘기를 많이 한 덕분이었지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환자를 볼 때 문진을 하는 것은 경찰이 사건을 수사할 때 하는 초동수사와 같은 것입니다. 처음 초동수사를 잘 못 해서 중요한 단서를 간과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범인을 바로 옆에 두고도 놓치는 것처럼 문진을 대충하거나 잘 못 하면 진단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필요 없는 검사를 남발하거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예 엉뚱한 곳에서 헤매면서 영구미제가 되거나....-_- 그러니....환자와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항상 수가문제에서 또 막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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