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수술을 마치고
1년간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분들이 있다.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허셉틴이 인정된 게 2년이 안 된다.
허셉틴은 3주 간격으로 맞기 때문에 환자를 3주 간격으로 꼬박꼬박 만나게 된다.
그렇지 않은 환자들은
수술/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 6개월 간격으로 외래를 보기 때문에
3주 간격으로 만날 때처럼 치료 후 환자에게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3주 간격으로 환자를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신체적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
심리적인 변화
그런 것들이 눈에 띈다.

그중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40대 후반 50대 초반 환자들의 새로 난 머리카락 칼라이다.
새로 난 머리카락의 색깔은 새치처럼 하얗지도 않고 칙칙한 블랙도 아니고 멋진 그레이 톤이다.
흰색 회색 약간 검은 색 이런 것들이
카페오레 만들 때 우유에 커피색이 섞여 들어가면서 부드럽게 융화되어 가는 것처럼
머리카락 색깔이 적절하게 어울러져 나기 때문에 근사한 그레이 헤어를 연출한다.
게다가 짧은 머리카락은 로커같이 터프한 스타일로 자란다.
생전에 그런 터프한 헤어스타일은 해볼 것 같지 않은
얌전한 스타일의 아줌마 환자들이 연출하는 헤어스타일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여전히 어색한 가발, 왕꽃이 달린 두건, 모자 등으로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짧은 헤어스타일을 꽁꽁 감추고 다니던 분들이
날씨가 더워지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기엔 답답하다고 아우성치는 헤어들의 요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훌러덩 다 벗어던지고
약간은 어색하게 외래에 들어오신다.

'오, 아주 멋진데요. 뭐가 바뀐 거죠?'라는 나의 질문에 수줍게 웃으면서
'이제 가발 벗었잖아요. 너무 더워서요.'
'어후, 가발보다 훨씬 멋져요. 이 헤어스타일을 계속 고수해보세요. 록 하시는 분 같아요.'
부끄럽지만 좋아하시는 눈치다. 멋지다고 하는데 누가 싫겠나...

새로 난 모발은 굵기가 가늘고 약간 곱슬거린다. 그래서 짧은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다양한 흑백의 톤이 섞인 머리카락 색깔에 맞추어
옷 색깔도 정하시는 듯. 블랙과 화이트로 멋을 내신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복귀하시는 분들께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조금은 뭉개지고 조금은 떨어진 자신감,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아무리 봐도
진짜 멋진 그레이 헤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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