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에 올라온 글입니다.

노숙자 문제 단상.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낙서장. 2011-7-21.

서울에 노숙인이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이 IMF때부터입니다.
당시 서울시에서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서울의 지역사회복지관에 "희망의집"이라는 것을 만들어 수십 명 단위로 생활하게 했었죠. (영등포역에는 대단위 시설도 있었어요)
제가 당시 복지관에 근무했었는데 10-11월이 되면 서울역에 나가 희망의집 입소를 권하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입소를 싫어하거든요.

희망의 집에 들어오면 낮에 잠을 잘 수도 없고 술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식사와 따뜻한 목욕, 편안한 잠자리 등은 제공되었고 원할 경우 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 겨울 찬바람을 피하는 것,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어디냐...고 할 수 있습니다만 장기간 노숙하시는 분들은 그것보다 통제를 더 싫어합니다. 희망의 집이 이렇다는 것이 소문이 난 후에는 신규 입소자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죠. 보통은 노숙을 한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 오셨습니다(시설의 특징에 따라서 통제의 정도가 다르기는 했습니다).

대규모 수용시설은 나름의 위계가 있기 때문에 서울역이라는 나와바리를 버리고 들어가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에요.

강제수용은 1600년대 유럽에서 하던 정책입니다('구빈원-poor house'이라고....).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하면 해외토픽으로 나갈 겁니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최근에 이런 일을 하기는 했죠. 1980년대 삼청교육대가 그랬습니다.

공공시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냥 잠만 잔다거나 화장실에서 씻는다고 쫓아내는 것이 과연 타당 하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냄새가 난다'가 유일한 이유가 될 텐데요. 강력하게 적용하기에는 좀 그렇죠.. 물론 역내에서 다른 사람을 물리적으로 괴롭힌다거나 술을 먹을 경우에는 퇴거를 시킬 수 있을 텐데 한 번 그랬다고 계속 출입을 막을 수 있느냐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상습적이라면 출입을 막을 수도 있겠습니다. 

A라는 노숙인이 승객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했다고 B라는 노숙인을 쫓아낼 수도 없습니다.

서울역에서 나가게 되면 다른 역을 찾아갈 것이고요. 모든 역이 막으면 주요 공원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영등포역 앞의 공원에는 이미 꽤 있습니다.

자활의지를 만들어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 두 해 교육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노숙인들에서 유병률이 높은 알코올 중독은 종합병원의 정신과에서도 가장 치료가 힘든 병 중 하나입니다.

시설의 질이 아무리 좋아도 안 들어올 것입니다. 그 시설이 프리즌브레이크 시즌3의 '소나'같이 그냥 넣어 놓고 아무도 신경 안 쓰면서 밥만 주는 정도가 되어야 많이 들어갈 거예요... 이것 역시 국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안에서 사고가 났을 때 책임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아무튼... 납득이 쉽지 않지만 지금의 서울역 집단 거주는 수십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꽤 합리적인 형태입니다...
 

1.무더위를 대비해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확인하고
>> 의외로 노숙인들에게는 냉난방이 입소를 판단하는데 별로 중요한 변수가 안 됩니다.

2.노숙자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 2000년대 초반 같은 의지만 있다면 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들이 원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3.그들의 건강여부를 체크하고 특히 개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알코올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한다.
그들이 알코올중독 등에 빠져서 노숙자지원시설을 거부한다면, 어느 정도 강제성을 발휘하는 것도 그들을 위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곤 해도, 알코올중독으로 죽어갈 자유까지 용인할 필욘 없지 않을까?
>>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개인의 의지에 반해서' 도움을 주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이념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 알코올 중독을 해결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성공률도 높지 않습니다.
>>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4.또한 그들이 직업을 가지고 노숙자 시설을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한다. 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교육하고 도와주는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전혀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본다.
>> 2000년대 초반 공공근로 사업으로 이런 일을 했는데요. 지금의 '희망근로'처럼 직업교육보다는 단순 노동 위주였기 때문에 재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 근로의지가 충만한 사람도 일을 찾기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의지를 만들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하는 일'은 아마 꽤 어려운 일이고 성공률이 낮을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해야죠.

복지 예산중, 이들 노숙자를 지원하는 것은 충분히 높은 우선순위를 가진다고 본다.
>> 맞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지원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립니다.
>> '의지가 있고',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대상들이 더 선호되는 지원 대상이거든요.
>> '알코올 중독자' 보다는 '소년소녀 가장'이 후원을 받기 더 쉬워요.
>>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방송은 늘 '의지는 있는데 여건이 되지 않는' 사례들이 소개 됩니다. '홀로 지저분한 방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면서 술만 먹는 사람'을 소개하면 후원금이 모이지 않거든요.

당장 굶거나 병들어 죽을 위험에 빠져있는데, 스스로의 힘으로는 충분히 해결이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이것이 단순히 세금만 쏟아 부어 주거지와 식사를 마련해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정말로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 이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감수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결코 비용대비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에요.
>> 소수는 자활을 하겠지만
>> 대부분은 '우리의 불쾌함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써서 안 보이는 곳으로 옮기는 일'이 될 겁니다.
>> 사회복지지출은 '사회 투자', '사회 비용'의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는데요.
>>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이 인력을 개발하는 사회 투자라면
>> 노숙인 문제 해결은 사회 비용이 될 거에요. 지출만큼의 성과를 얻기는 처음부터 힘든 일입니다.
>> 자본주의사회에서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실업, 빈곤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입니다.  

물론 이런 정책은 지금도 하고 있긴 하나, 노숙자문제가 다시 한 번 공론화가 된 만큼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나싶다.
>> 네. 맞습니다. 문제의 공론화는 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2000년대 초반이 그랬습니다.


저 역시 심야시간 서울역(기차역)을 종종 이용하는데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실은 꽤 불쾌하죠. 그렇다고 강제적인 뭔가를 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 많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이 문제만 10년 넘게 고민한 전문가, 실무자들이 많습니다. 언론에 소개되는 이들의 의견은 그냥 '강제 퇴거에 반대한다.', '또 다른 문제를 만들 것이다'정도 뿐인데요. 이들의 깊이 있는 의견을 들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처럼 10년 전 부수적인 업무로 2-3년 해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훌륭한 의견을 주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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