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이라 쓰고.... 외상 처치실 이라고 읽는다. ㅡㅡ;;)의 환자를 본 것도...
얼추 7개월이 되어 간다...
물론 인턴 돌 때 사이사이에 환자들을 본 적이야 있었겠지만...
본격적(?)으로 응급실 환자를 본 것은 그렇다는 이야기...

여튼...
응급실이라고 해봐야 공단 안의 조그마한 응급실이고...
그렇다 보니 일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경우 다치고 째지고 까지고 뭐 이런 환자들이다...
고로 우리네 말로는...
95% 이상 Trauma 환자들만 온다고 한다...

그래도 오래 있다 보니...
웬만한 환자들을 F/U를 하며 보고...
그렇다 보니 자신감이 나름 쌓이는데...
뭐 낯간지럽지만... 소개를 하자면...

손이 거의 다 잘리다시피 한 외국인 노동자를...
인턴 말미에 1시간 반에 걸쳐서 2중으로 꿰맸는데...
뭐 최종적으로 손톱은 나지 않았지만...
모양은 예쁘게 잘 유지가 되었다라거나...

눈썹 위가 깊이 찢어진 할아버지였는데...
그 다음 번에 왔을 때는 그 상처가 어디였는지 차트를 보고도 찾기가 어려웠다거나...

손톱이 완전히 빠지고 아래가 찢어진 사람을...
어깨 너머로 한두 번, 유튜브로 한두 번 보고...
스스로 해냈다 라거나...

뭐...
여튼 그렇다보니...
짐작하다 시피 대부분의 경우 찢어진 상처 꿰매는 건 이제 일도 아니게 생각하는데...

사람이...
아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오만...
자만심 이런 것들은 멀리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최근 들어 발생하는 터라...
마음도 다잡을 겸...
생각 날 때 글로 남겨둬야겠다...

A씨를 처음 봤던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그 당시에도 귀에 (Auricle에) 피지가 원인으로 붓는 바람에 내원했었다...
당시 1년차 선생님께서 최대한 짜주고 긁어내어주고 한 끝에 별 이상 없이 지나갔다...
그 분이 4월에 다시 내원하셨다...
역시나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이번엔 귀 뒤쪽에 그런 상처가 생긴 게다...
나는 제일 처음에 그저 어떤 화농성 질환인 줄 알았지...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간호사에게 I&D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고 Incision을 넣고 역시나 배웠던 것처럼...
쭉쭉 짜주는데...
어라라...
그 화끈한 느낌은 어디로 가고...
비지 같은 분비물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에는 피지... 여튼 어떤 지방질 같은데...
짧은 지식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할 지 순간 감이 안 잡히는 것...
lipoma라면 그 경계를 따라 완전히 제거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으나...
또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농이 차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음...
이건 또 감염성 질환은 아니라는 생각에...
찜찜하지만 그냥 최대한 짜내고...
그 상처를 봉합해 버렸다...

그런데...
이 선택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그 상처가 봉합이 되었다면 큰 탈이 없었겠지만...
되레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을까...
며칠 동안 계속 그 특유의 분비물... (정확히 진단을 내리지는 못 했다 ㅠㅠ)
이 나오는 탓에...
1주일 후 다시 그 실밥을 풀어버렸다...
사실 뭐 풀려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내원 10일 내내 그저 열어놓은 상태로 있을 뿐...
상처에 진전은 없고...
A씨는 이제 매일 같이 오는 응급실과...
활동상의 장애와...
미용상 불편감으로 인해 슬슬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초기 상처 관리를 잘 못 한 탓이라고 우길 수 있었지만...
(처음 며칠 간 머리를 감느라 물이 상처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 마음이 어찌 그런가...
2주일 정도 걸린다는 치료 기간은...
상처를 꿰맸다 열었다 반복으로 2주가 지나가 버렸다...

슬슬 환자분을 보는 것이 스스로가 민망하더라고...
자신 만만하게 2주라고 했는데...
이건 뭐...........

그리고 다시 꿰매고 상처 소독...
그리고 다시 10일여가 흘렀다...
거의 한 달 내내 병원을 오가며 고생을 한 A씨...

올 때 마다 짜증은 기본이고... (나라도 얼마나 화가 났을지 ㅡㅜ)
'제발 그 상처 덮는 것이라도 작게, 안 보이게 붙여 달라'고 매번 실랑이를 하셨다...

여튼...
그렇게 한 달여가 되던 때...
나는 그 분이 올 때마다 다른 일을 핑계로 인턴에게 처치를 맡기고 숨어 있기 일쑤였고...
(대부분 일이 있기도 했다 ㅡㅡ;;)
그 날도 그랬는데...

응급실에서 나를 찾는 것이 아닌가...

"저 선생님... 그 A 환자분 오늘 실밥을 풀어달라는데 어떡할까요? 단단히 마음먹으신 것 같은데..."

인턴 선생님이 하는 말에...
가서 당장이라도 환자분을 뵈어야 마땅했으나..........
나의 회피 본능이 먼저 작용...
날짜를 물어보고...
상처 상태를 물어보고...
그렇게 한참을 미적대다가 가보았다...

역시나 약간은 화가 나 있으신 A환자분...

그래도 나름 집도의 (?)가 나타나니 담담해 지셔서 진정된 상태에서...
나는 별 다른 얼굴 붉힘 없이.....

'그 동안 환자분 고생도 많았겠다...
다시 꿰맨지도 2주가 지났으나 좀 나아졌겠지...'
생각하며 실밥을 풀렀다...

아.뿔.싸.

근데 봉합 된 줄 알았던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이 아닌가.....
속은 제대로 다 아물었는데...
겉에 상처가 살짝 벌어지는 느낌에...
경험이 짧은 1년차가 뭘 어찌할지 알겠나...

그저 그 상황의 모면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뿐...
또 이전에 본 것은 있어서...
인턴에게 'Skin tape'로 모아주라고 하고...
그렇게 또 지나쳐 갔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을까...
외래를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거다...

"선생님 A환자분 있잖아요... 상처를 보셔야겠어요... 이건 그냥 내버려 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아아...
역시나... 이렇게 사단이 또 나는 구나...
상처를 보러 갔더니...
역시나 벌어진 채로 회복이 되지 않는 것...

이제는 설득의 문제다...

한 달 반이 되도록 간단한 상처 하나로 씨름하는 환자분이 겪는 불편함과...
분노가 익히 짐작이 되었지만...
그래도 정면 돌파 밖에는 답이 없지 않나...

그렇게 또 다시 설득에 들어갔다...

"저 환자분 상처가 벌어진 부분이 있어서 다시 꿰매셔야 될 것 같아요..."

어이없어 하는 A씨 앞에서...
정말 나 스스로도 얼굴이 화끈 거리고... 죄송한 마음 밖에는 없었지만...
당시의 최선의 방법은 그것 밖에 없어서...
무릎을 꿇더라도... 관철을 시켜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들더라...

그래도 이 분...
그래야 한다면 그러라는데... 참........
초보 의사 만나서 웬 고생이신지 ㅠㅠ

그렇게 또 다시 굳어버린 살을 이제 메스로 잘라내고...
다시 봉합을 했다.........

이제는 끝이겠지?
그렇게 아스라이 기억이 저물어져 갔고...
뭐 별다른 말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렇게 그렇게 해결이 되었나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그와 유사한 케이스가 생겨서 온 환자가 있어서...
불현듯 그 A씨가 떠올라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물어봤다...

"그 있잖아요... A씨... 귀 뒤에 치료하시던 분... 그 분 상처 어찌 되었나요?
그 이후로 안 보이시네...
봉합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너무 불안한데...."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

"아 그 분... 저녁 때 오셨었어요...
실밥 다 풀고 처치 잘 되셔서 이제는 안 오세요...
뭐 완벽하진 않아도 훨씬 나아지셨던데요..."

그 말에 십년감수한 생명...
다시 연장되는 느낌이란.......

혹시라도 얼굴 붉히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한참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그래도 잘 되었다니...

괜스레 또 그새를 못 참고 으쓱댄다...

"봐봐... 그 때 내가 Debriment을 쳐서 그게 다시 붙었을 거야... 그냥 꿰맸으면 또 안 붙었을지 어떻게 알아?
잘 되었네... 의욕이 생기는구먼...."

참...
뭘 잘 했다고 그런 말이 나오는 건지 ㅡㅡ;;

어쨌든 처음의 판단이 얼마나 한 사람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 Case...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이 더 많기에...
항상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내가 만나는 환자는 무수하겠지만...
환자가 만나는 의사는 정해져 있으니까...
모두에게 처음 마음처럼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200%를 다 동원해야 하는 것......

여담으로...
돌팔이 논란 등등이 일까봐 스스로 자백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다시 그런 상황이 되어도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
버뜨... 처치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해 질 것 같다.....

여튼 그 분께는 정말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그 상처로 인해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고생하시게끔 한 것...
결과야 어찌 되었든...
너무나도 죄송하고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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