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디자인이란, 나쁜 제품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많은 이들이 아시다시피) 심각한 애플빠입니다.

제가 애플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로, 따지고 보면 초기 사용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얻게 되었고, 살면서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 세 가지 중 하나를 꼽을 때 애플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들어갈 정도로 저에게 있어 애플이 가진 의미는 정말 큽니다.

>최근 애니모드라는 회사에서 아이패드 2의 스마트커버와 거의 비슷한 느낌의 제품을 출시했다가 엄청난 비웃음거리가 된 것<을 아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정말 재미있죠? 어처구니없기도 하구요.

그러나 저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었다가 여론이 안 좋게 되자 제품 판매를 보류한 것이, 한국 상황에서는 무척 새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다양한 애플의 복제 디자인의 제품, 심지어는 다양한 요소를 복제, 합쳐놓은 디자인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플과 관계된 따라 하기 이슈는 애플빠인 저 같은 사람이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수 년 전부터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흥분하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대체로 "그래?" 라거나 "헐, 정말 비슷하긴 하네.", 또는 심지어 "그게 뭐가 베낀 거냐?"라는 반응까지 있었습니다.

애플만의 문제였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삼성이나 애니모드 뿐 아니라 다양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유명한 디자인의 제품을 복제했고, 심지어 광고, 음악, 미술, 패션, 출판, 교과서, 법률들도 해외의 사례들에서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이해 없이 복제되어 한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고, 저를 포함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그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앞 뒤 맥락도 없이 뒤섞인 문화를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어린 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경험해 왔습니다.

아래 사례를 보시면, 벌써 꽤 된 일이지만 애플의 제품에서부터 소재나 외형을 다양하게 따라한 제품들이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고민이 많이 담긴 의미 있는 디자인의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별할 기준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상당히 잃은 채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게 우리의 삶을 답답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맥의 디자인<과, 이를 >엉성하게 따라한 삼보컴퓨터의 루온<

위의 사례는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는 분은 많지 않으셨죠? 차라리 자신만의 올인원 PC를 디자인하는 것이 좋았을 것을, 저렇게 놓고 비교해 보면 정말 안쓰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제품들을 우리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적당한 소비의 하나로 인식하고 구입하고 사용해 왔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마 수십 년 전의 전화기를 보면 우리가 볼 땐 별 차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 때엔 분명 처음 고민해서 만들어 낸 제품과 이것을 별 고민 없이 베낀 수많은 제품들이 있었을 겁니다. 어떤 디자인의 제품이 더 오래 두고 쓸 만한 제품일까..생각해 보셨나요?

좋은 디자인이란, 좋은 제품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반대쪽에서의 질문을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쁜 디자인이란, 나쁜 제품이란 무엇일까요?

이 문제의 답은 좀 더 쉽습니다. 저는 철학이나 일관된 방향성이 없는 디자인, 큰 고민 없이 단지 쉽게 트렌드를 따라 만들어 팔고 끝나버리는 제품이 나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디자인이나 제품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중 하나는 그게 어떤 방향이든 일관되고 진지한 디자이너의 고민이 있고, 생각의 완결성이 있고, 제품의 일회적인 사용이 아니라 그 제품을 둘러싼 상황과 배경,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 미래까지도 고민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오래 된 물건들이나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 중에는 이런 의미 있는 디자인이나 고민이 들어간 물건들, 또는 그 시절의 문화적 의미를 지닌 제품들과 그런 고민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팔기 위해 급히 만들었던 제품들이 섞여 있습니다.

유즈드프로젝트는 집에 있는 이런 물건들 중에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거나 그저 자리만 차지하게 된 아까운 물건들 중에서도 사용자에게 지금도 감동을 주거나 제 역할을 든든히 할 수 있는 제품을 찾아 제 자리를 찾아 주려는 시도로서 위탁 판매를 하는 곳입니다.

일본은 D&Department Project 의 성공적인 모습에서 단지 "쓰던 물건의 재사용"이 아닌 "좋은 물건의 재발견을 통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를 잘 하고 있는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

제닥 생협의 조합원들에게는 이번에 복실복실코스모스마켓이라는 작은 장터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번 행사는 단지 집에 있는 중고품을 내놓고 아나바다운동같은 것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대한 작은 재발견이랄까요, 유즈드프로젝트에 위탁할 만한 좋은 디자인의 물건을 찬찬히 찾아보고, 이것을 공유하고 다시 잘 사용되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그러나 우리를 조밀하게 둘러싸고 있던 디자인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제가 애플을 만난 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듯이 여러분도 주변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고, 소중한 것을 보다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기준을 얻을 수 있겠죠?

이상, 유즈드프로젝트의 미래와 복실복실코스코스마켓을 기대하는 한 애플빠의 장황한 글이었습니다.

- 김제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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