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 즈음의 내 나이 또래 환자들,
언니 혹은 동생이랑 같이 자매끼리 외래에 오시는 분들이 많다.
언니 동생 각각 다 결혼해서 자기 가족이 있지만
치료받고 병원 다니는 과정을 함께 해준다.

40이 넘었으니
집에 돌봐야 할 갓난쟁이 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아이들도 커서 엄마가 시종일관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투병생활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만 하다.

사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도 있지만
환자가 뭐가 힘든지 눈치도 잘 못 챌 뿐더러
빠릿빠릿 몸을 움직여서 환자를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남자가 그렇다... 쯧쯧

환자는
누군가 나를 위해서
입에 혀처럼 마음에 꼭 맞게 뭔가를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걸 입 밖에 내는 건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직접 쿨하게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도 힘들고 마음도 약해져서
항상 이중적이고 어정쩡한 입장이다.
누군가의 돌봄 필요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는 당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어서 누군가가 다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존감.
그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게 자매다.

항암치료 2주기를 마치고 온 그녀.
단발 스타일의 가발도 잘 어울리고
얼굴색도 좋다.
피부도 팽팽하다.
옷도 멋지게 입고 왔다.

"항암치료 받는 분 같지 않네요?"
"너무 잘 먹어서요."
"뭘 그렇게 드세요?"
"언니가 계속 뭔가 먹을 걸 만들어줘요.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사골국물도 엄청나게 많이 끓여놓고 매일 보온병에 싸주고 있어요. 회사에서 일하면서 물처럼 마셔요."
"네? 물처럼요?"
"호호, 네. 언니가 매일매일 끓여다 갖다 줘요."

항암치료에 긴장해있는 그녀가 언니의 사골국물 애기를 하면서 웃음을 보인다.

"남편보다 낫네요."

순간 빵 터진다.

그렇지만, 걱정이 뒤이어 오는지 얼굴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가 더 드리워질까봐 나는 선수를 친다.

"사골국물의 단백질 양은 그냥 고기로 먹는 거의 5% 밖에 안 되니 국물 말고 고기로 사달라고 하세요."

다시 웃는 환자.
언니가 또 고기 사주겠죠. 라며 외래를 나선다.
언니가 최고다.
남편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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