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에 대해 처방전을 재사용 하도록 하는 ‘처방전 리필제’ 법안이 하루 만에 발의 취소되었다. 발의 의원 10명 중 1명의 동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가 급증하면서 건강보험재정 누수와 환자의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처방전 리필제’는 계속 대두되어 왔다. 그러나 만성 질환자에게 정기적 대면진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건강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대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처방전 리필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전에, 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환자의 편의성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고혈압, 당뇨 같은 질환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쉽게 관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세밀하고 정기적인 대면진료가 더욱 요구되는 질환이다. 의학적으로 볼 때, 만성 질환자의 50%이상이 두 개 이상의 질병을 동반하고 있고, 합병증 역시 질환의 초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 제도가 시행되어 임의로 기존의 약을 리필 받는 경우,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위험성은 당연히 클 수 밖에 없다. 

환자의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주기적 대면진료의 번거로움 역시 해결되어야 함은 사실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거리상 병원을 방문하기 힘든 경우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보호자가 대신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도록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3개월의 유효기간 중 5회 이내의 반복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정한 ‘처방전 리필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례를 무작정 반영하기 보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어떤 면이 다른지부터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환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안으로서 ‘처방전 리필제’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 대한 방문진료 활성화나 원격(화상)진료를 통한 처방전 발급도 편의성과 건강권을 보완하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전문의약품은 적절히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남용 시 독이 될 수 있는 부작용이 많은 의약품이다. 전문의약품을 콜라와 같이 리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국민 건강을 위하는 것인지 환자 입장에서의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경희대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최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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