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보기 운동까지 지난 총선에 등장했습니다. 의료 정책이나, 보건 전문가들이 의료 시스템의 이해를 위해 보라고 한 것도 아니고, 평소 의료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이 보라고 권한 식코. 왜 보라고 했을까요? 또 보신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게 되었나요?


식코(SICKO)를 통해 해외 여러 나라의 의료시스템을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 중 최악의 의료시스템으로 표현된 미국의 사례를 보면서 '저렇게 되면 정말 큰일 나겠구나'라고 생각하셨으리라고 봅니다. 또 지금의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매우 좋은 제도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으로는 당연지정제폐지 및 민영보험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정치적으로 식코 보기 운동까지 전개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식코를 조금은 더 냉정한 관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먼저 식코가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있는 그대로를 잘 표현한 영화일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잘 아시겠지만, 식코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의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만든다큐 형식의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소개된 일화들은 미국에서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한편으로 복지와 의료 혜택이 많은 것으로 표현된 다른 나라들에서도 많은 의료 문제들로 고민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코메디닷컴의 이성주 기자님의 칼럼을 참고 하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의료 제도(NHS)에 관심이 많습니다. 식코에서 소개되었듯, 국가에서 고용한 GP(일반의)들이 해당 국가가 운영하는 클리닉에서 국가가 지급하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금연 운동', '만성질환 관리'등의 성과가 실적, 인센티브로 연결되나봅니다. 그러다 보니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보다는 보건행정업무에 치중 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도 선거 때 NHS 개혁을 외치는 정치가들이 많고 영국 의학저널에는 NHS의 실패에 대해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장점만 있는 제도는 없나봅니다.


이제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의료 시스템 걱정에서 벗어나 우리가 어떤 의료 시스템에서 얼마만큼의 보장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식코 덕분(?)에 우리의 건강보험제도가 참 고맙다고 느껴집니다. 그 건강보험제도 덕분에 손가락의 가격을 매기며 어느 손가락을 이어 붙일까 고민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 그렇다면 우리 건강보험제도 하에서는 치료받을 환자가 보험규정 때문에 치료 받지 못하는 일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건강보험은 재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아 모든 상황을 감당해내지는 못합니다. 예전에 흑자로 유지되던 직장보험과 적자인 지역보험을 통폐합하는 극약 처방 이후에도 지속적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의약분업이라는 매우 세련된(의약품 안전을 강조한) 제도가 실시되면서 건보 재정의 부담은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적자 원인이야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관리하는 당국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계, 사용자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책임들이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이기에 보험 적용 범위를 어떤 질병의 어떤 치료를 우선으로 할지 정하는 일에 보건 당국은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중병 위주로 보험을 꾸리면 건강 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줄어들어 국민들이 보험의 효용성에 대해 잘 모를 수가 있을 것이고 너무 경질환 위주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는 중증 질환의 경우 보험이 제대로 보장을 해주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기본 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질환에 대한 보장을 늘리기 위해 경질환의 본인 부담 비율을 높이고 나서 이용자의 불만이 높아졌지요.


또한 질병에 대한 어떠한 치료를 보험 적용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따릅니다. 과학적 근거에 따른 의료 정책이 공공의료가 강화된 제도하에서는 가장 중요시 되야하겠지요. 왜냐면 이는 모든 사람이 낸 세금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관을 읽고 이 보험이 좋다고 생각해서 선별적으로 가입한 보험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강제 가입되는 보험인데, 근거 없는 치료가 보험이되어 내가 낸 보험료가 낭비된다고 생각해보면 억울하죠. 최근에는 온천 이용도 보험 적용을 생각한다는 기사가 나와 놀랐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공보험에서도 식코에서 봤듯 '보험적용의 불가'를 자주 선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대부분 모를 것입니다. 왜냐면 그러한 통보를 의사에게 하기 때문이지요. 의사들은 교과서나 학술지에 나오는 치료 원칙만큼 보험기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만, 두 가지의 원칙이 상충할 때에는 보험기준을 어기는 경우가 지금까지는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삭감되더라도 아주 큰 돈 아니면 좀 손해보고 말지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큰 비용이 들어가는 항암치료와 같은 것이나, 일부 고비용의 검사같은 경우에는 병원 경영에 큰 부담이 되죠. 그렇다 보니 아애 비급여로 돌려서 청구하기도 합니다. 이러면 환자가 보험이 적용되었을 때 보다 많은 돈을 내게됩니다. 보통 병원측에서는 의사에게 비급여로 청구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의사 중에서는 고집스럽게 보험청구를 하기도 하죠. 이렇게 되면 환자가 병원을 나갈 때 보험이 적용된 금액을 냅니다만, 심평원에서 삭감을 당해 병원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두 방법다 문제가 있습니다. 비급여로 청구한 것에 대해 환자가 공단에 문의하면 공단 측은 보험 기준으로 봤을 때 과다한 청구라고 이야기하고, 환자는 병원이 부당하게 비용을 징수했다고 생각하게됩니다. 또 병원에서는 다시 돈을 환급해주는 일도 생깁니다.


보험을 적용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렇게 삭감당한 사례를 모아 부당한 청구를 한 병원이라고 해마다 공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발표 때마다 국내의 우수 대학 병원이 순위별로 다 들어가 있는데, 이는 사실 환자들에게 받을 돈을 보험에 청구했다는 것인데요, 대부분 병원의 윤리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으로 보도가 됩니다. 의사 개인에게도 병원에서의 압력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제가 아는 교수님은 항암치료 받는 환자분과 모의(?) 하여 청와대 민원을 줄기차게 넣으시는 분도 있습니다. 의료시스템 속에서 의사 역시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청와대 민원을 넣는다고 이러한 모순이 해결될리는 없습니다만, 그 교수님과 그 환자분은 어떻게든 힘있는 사람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주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상황은 이렇지만, 건강보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아주 극적인 상황도 연출이 됩니다. 부당청구로 환자들에게 환불을 하라고 하고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소송도 거는 일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앞으로는 '보험 기준에 따른 항암치료만 하겠다'고 병원에서 이야기하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죠. 해당 병원이 가톨릭 재단의 병원으로 손해를 감수하며 전국 백혈병 환자의 절반을 치료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분명 제도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대부분 '병원의 부당 청구'라는 단편만 보게 됩니다.


얼마전 보건복지부 장관님께서 의료계에 쓴소리를 하셨습니다. 현재의 건강보험제도 틀을 유지할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국민들의 낮은 만족도는 이미지 메이킹의 실패'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병원 이용에 만족감을 높이고 또 의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보험 기준에 합당한 진료를 해야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부당청구 뉴스도 없을 것이고 환우회에서 소송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굳이 병원과 의사들이 정부와 환자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일 이유가 없는 일입니다. 제도의 부조리와 불만족이 있다면 사용자가 나서서 개선을 요구해야하는데, 지금은 사용자는 현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보험 기준에 치료를 펼치는 것이 가장 큰 준법 투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전에 한정호 선생님의 포스트에서 볼 수 있듯, 환자가 위급하면 급여, 비급여 생각 안하는 것이 의사의 생리니까요. 때문에 현 제도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의사에 대한 이미지는 좋아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상의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비난을 감수해하는 현실이니까요.


그렇다고 지금의 보험제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보험의 민영화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의사들이 당연지정제의 폐지나 보험 민영화를 당연히 찬성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수정해야할 부분이 너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 보험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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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의 시대에 망하는 의사들
영국식 의료체제와 우리가 다른 점.
당연지정제 폐지와 식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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