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남도 섬에 사는 스무살 젊은이.

4년전에 고환에서 뭔가가 만져져서 수술을 하였다. Embryonal carcinoma (배아상피암). 예후가 좋은 암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처음 찍은 PET 사진에서 전신의 뼈, 양쪽 폐, 온몸의 림프절, 간, 다리 근육 등 전신 여기저기 암이 재발하여 허옇게 조양증강이 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원발병소는 수술했지만 순식간에 전신전이가 진단된 것이다.
척추에 암세포가 침투하여 골절이 와서 신경증상이 나타나 척추를 바로 세우는 수술부터 하였다.
9번의 항암치료, 다행히 반응이 좋아 자가조혈모세포 이식까지 하였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한다는 것은 자기 조혈모세포를 2번에 걸쳐 추출하고, 아주아주 강한 항암치료를 두 차례 한다음, 모아놓은 자기 조혈모세포를 다시 투여하는, 아주아주 힘든 치료방법이다.
조혈모세포 이식 6개월만에 뇌전이와 뇌막전이가 진단되었다. 뇌와 척추를 잇는 공간에 방사선치료, 전체 뇌 방사선치료를 추가하였다.
그리고 1년 있다가 뇌부분의 뼈에 또 종양이 재발하였다. 종양을 제거하는 뇌수술을 받았다. 뇌수술을 마친 것은 1년 6개월 전.
그 이후로 항암치료는 하지 않고 3개월에 한번씩 CT사진찍고 경과관찰중이다.
이것이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이 환자의 병력요약이다.

환자는 어제 검사만 해놓고 오늘 병원에 오지 않았다. 엄마가 결과를 들으러 오셨다.

환자는요?
일본 간다고 서류 준비하느라 바빠서 못왔어요.
일본에는 왜요?
공부하러 간대요.

차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던 환자의 지난 3년을 엄마가 숨도 돌리지 않고 말씀해주신다.

걔는요 일본어를 좋아하더라구요. 항암치료 중에도 계속 일본어 공부를 하고, 항암과 항암 사이에는 일본 배낭 여행도 다녀왔어요. 제가 울고불고 난리쳐도 고집피우고 가더라구요.
그 사이에 수능도 보구요 전문대학 갔어요.
전문대 졸업하고 일본에 공부하러 간다고 알아보더니 곧 출국이라 서류준비하러 돌아다녀요.

무슨 공부요?
음악공부요. 악기 해요.
검사는 어떻게 하죠?
다음 3개월에 한번 들어온대요. 그 다음부터는 6개월에 한번씩 하면 안될까요?
그렇게 합시다.

환자는 척추골절이 있었는대도 보드를 배워서 겨울마다 보드를 타러 다닌다. 용감한 청춘.
아직 폐와 뼈에 잔존암이 남아있다. PET를 찍어보면 활동성이 있는 암이다. 그러나 이 암의 특징은 한번 안정화되면 병이 있는채로도 그냥 그렇게 있는게 특징이다. 효과적인 항암치료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경과관찰이 정답이다.

다음에는 제가 직접 봤으면 좋겠습니다.
왜요? 결과는 항상 제가 들으러 왔었어요.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슈퍼맨을 만나게 해주세요. 일본 정보도 듣고 싶어요. 제 딸도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하고 일본 가고 싶어해서요.

엄마가 활짝 웃는다.

그렇게 할께요.
후배를 위해 좋은 정보 많이 부탁드려요.

환자를 보지 않은채 어제밤 병력을 정리하면서
아이쿠 이를 어쩌나. 환자 괜찮나 싶었은데
막상 환자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 젊은이의 미래에 병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연주를 꼭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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