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으로 외래에 온 환자.
5년만에 유방암이 재발했는데 양쪽 늑막에 악성 흉수가 고이는 것으로 재발되었다.
다행히 아직 다른 곳에서 전이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흉부외과에서 수술적으로 흉막유착술을 했는데도, 물이 쉽지 마르지 않는다.
항암치료를 하여 효과가 있으면 물이 흡수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아직 물이 많이 차 있는 쪽에 작은 관을 하나 넣어두었다. 물이 많이 고이면 숨쉬는게 힘드니까, 병이 좋아질 때까지 관을 유지하면서 물을 조금씩 빼주는게 환자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아직 약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좀 기다려봐야 하는 때인데,
환자가 숨쉬기도 힘들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외래에 오셨다.
가슴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관이 막혔는지 물이 더 많이 찼다.
심전도를 찍어보니, 이전과 다르다.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증후군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는 심전도다. 그러나 나는 이제 심전도 판독을 잘 못한다. 자신없다. 그냥 봐도 될지, 뭔가 검사가 필요한 상황인지 모르겠다.
외래 시간은 이미 4시가 넘었다. 다른 과 외래는 접수마감시간이다. 일단 환자를 영상의학과에 보내서 환자 관의 위치를 조정하였다. 고여있던 물이 나오니 숨쉬는게 편안해지셨다고 한다. 가슴통증도 이제 없으시다고 한다. 그렇지만 심장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시간은 4시 50분, 심장내과 외래에 전화를 하니 이미 진료는 다 끝났다고 한다. 내일 아침 외래를 잡아달라고 했다. 한달 전에도 비특이적인 가슴통증이 있어서 심장내과 선생님 진료를 본 적이 한번 있었는데 그 선생님 외래는 1주일 후에 있으니 그때 진료를 보라고 한다. 이번의 통증이 2번째라, 난 그때까지 못 기다리겠다고 했다. 내일 오전 제일 이른 시간으로, 일반외래라도 잡아달라고 떼썼다.
오전 외래가 꽉 차서 어렵겠다며 그렇게 급하면 환자를 응급실로 보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환자는 지금 꼭 응급실을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환자는 일단 편안해 졌으니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하신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환자를 응급실로 보내고 싶지 않다. 지금 응급실에 가면 환자가 너무 고생할 것 같았다. 응급실 화면을 띄워보니 누울 자리도 없는데...
차라리 기본 피검사를 해놓고 내일 결과를 확인하여, 외래에서 필요한 검사를 추가로 더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았지만 이런 나의 바람은 통하지 않았다. 나만 쫄쫄 타는 것이다.

난 결국 심전도를 종이로 뽑아들고 아는 심장내과 동기 펠로우를 찾아가 좀 봐달라고 했다.
그는 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심초음파나 관상동맥 CT를 찍어보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환자를 직접 안봐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내가 대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니, 내가 말한 환자 정보가 충분하지 않나보다.
외래에 다시 전화해서, 무조건 내일 진료 시간 잡아달라고, 환자 나빠지면 책임질거냐고, 지금 응급실 자리도 없는데 4기 암환자를 응급실에서 대기하게 만들어야 되겠냐고, 나는 또 흥분해서 마구 떼를 썼다.
이번에 전화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나보다. 왜 자기한테 화를 내냐고, 자기는 이 전화 지금 처음 받았다고. 아차.
그렇지만 나는 애가 탔다.

환자 진료를 잘 하려면
개별 의료진이 성의있는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편리하게, 환자 중심으로 프로세스가 굴러가도록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 병원에서 트레이닝하고 외부병원으로 나가신 선배님들, 우리병원 인근 지역에서 개업하여 병의원을 개업하신 선배님들이 말씀하신다. 세브란스병원에 환자보내기 너무 불편하다고.
나도 이렇게 불편한데 어련하실까? 환자들은 어련하실까?
애 타는 환자의 마음, 보호자의 마음, 주치의의 마음이 뻥 뚤리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텐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걸까?
건의하기 무섭다. 건의하면 나의 일로 떨어질 것 같다. 일을 줄여야 하는데... 그냥 조용히 혼자 애태우다가, 아는 인맥 동원하여 문제 해결하고, 내 환자에 급급한 채로 진료하며 살고 싶다. 이기적으로.

우리 병원은 좋은 병원이지만 좀더 이용하기 편리하고 시스템적으로 잘 운영되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누군가 헌신하여 조직의 결함을 발견하고, 안되는 일을 되게하는 노력을 기울어야겠지. 노력하지 않고 개혁하고 변화 발전하는 일이 어디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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