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는 이중섭 거리라는 예쁜 골목이 있다.  차가 다니면 통통 튀어 다닐 듯한 돌 바닥 골목이다.  그 골목에는 고 이중섭 씨가 살았던 오래된 초가집도 있고, 작은 전시관도 있고, 1950년대의 옛 영화관도 있다. 그 벽에는 신사 모자를 쓴 미소가 멋진 당대의 남자배우가 그려져 있다.  

돌길 양옆으로는 걷는 이를 위한 짚으로 만든 햇빛막이가 처져 있다.  그 골목길엔 맛있는 국숫집도 있고, 밥집도 있고, 호젓한 카페도 있다.  이래서 내가 이 골목을 좋아라 할 수밖에 없다.  호젓한 카페에 눌러 앉아 주인에게 항상 먹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보통은 이렇게 세팅하고 독서를 한다.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는 하나를 더 추가했다.  너무 머리가 아파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베스트셀러라, 읽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사용하는 단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괴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 그 남자, 마이클 센델의 예들이 어려웠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당신은 기관사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고, 방향은 선택할 수 있다.  한쪽 길에는 인부 세 명이 일하고 있고, 다른 쪽 길에는 인부 한 명이 일하고 있다.  두 길 다 그 길로 갔을 때 사람이 다 죽는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대부분은 인부 한 명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번엔,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 근처에 있는데, 당신 옆에는 덩치가 큰 남자가 있다. 기관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것을 안다.  그대로 두면  철로 위의 인부 세명이 죽을 거라는 것도 안다.  이때 당신 옆의 덩치 큰 남자를 밀어서 기찻길로 떨어뜨리면 기관차가 멈출 거라는 것도 안다.  이때는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아마 망설일 것이다. 쉽사리 철로 위로 덩치 큰 남자를 밀지 못한다.  

두 예에서 어떤 차이가 있길래 당신의 선택이 흔들릴까?


이런 식이다...그 외에 조난자들이 먹을 게 없어서 다 굶어 죽는 게 나으냐, 아니면 제일 약하고 일찍 죽을 것 같은 사람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이 사느냐...이런 예들을 던지는 거다.  이러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머리숱이 100개는 빠진 거 같다.


이 하버드대학교 교수 왈, 도덕에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고 했다.

자유, 행복, 미덕이 그것이다.

'자유'는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한다.  인간을 자기 자신을 온전히 소유한다. 그러니 내 선택의 자유를 건들지 마라...이렇게 얘기하는 지상 자유주의자들도 있고, 또 다른 관점으로 자유를 바라본 평등 자유주의자들도 있다.

'행복'은 공리주의자들이 추구한다.  인간은 고통을 싫어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그러니 사회적 결정도 쾌락의 합과 고통의 합을 고려해서 쾌락이 더 많은 쪽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다.  이 책을 쓴 센델 교수도 미덕을 강조한다.  인간은 스토리 위의 존재라는 공동체 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가치이다.

이 세 가지 중 의료에 가장 적합한 방향은 자유도 행복도 아닌 것 같다.  미덕이 답인 듯하다.  

그 이유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면 자살은 어떻게 막을 거며? 안락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자살이라는 사회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문제가 아니며, 안락사 역시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므로 막으면 안 될 것이다.  

공리주의도 의료에 맞지 않아 보인다.  여러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무 문제 없는, 건강한 한 인간을 희생하여 장기이식을 하는 것에도 공리주의는 찬성할 테니까.

그래서 미덕이 답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어떤 미덕을 따라야 하는지 불완전하다.  여기는 더 공부를 해봐야 할 포인트였다.  내 다음 여정은 아마 이것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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