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서
나른하기까지 한 오후.



좁디 좁은 방한 칸에 4식구가 2층 관사에 살고 있다. 국가의 부름으로 공중보건의사로 지낸지 이제 2년째.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좁은 방이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진료를 해야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시골도 4차선 도로가 고속도로처럼 뚤려 위로 10분만가면 대구요, 아래로 10분만 내려가면 읍내가 나와 종합병원이
여러개 있다. 게다가 내가 있는 이 곳에도 개인 의원이 있으니 예전의 무의촌에 의료의 접근성이 좋지 않은 농어촌에
근무한다는 것은 이미 낡은 생각이다.



집집마다 차가 없는 사람이 없고 버스도 다니니 왠만하면 개인 의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그나마 보건소(정확히는
보건지소)에 오는 것은 65세이상 경로 무료환자분들이다. 대부분 지방 자치제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분들에게 본인이
내야하는 부담금을 지방정부가 대신 내주고 있다. 사실 지방의 농어촌이 대부분 지자체는 예산의 대부분을 중앙에서
끌어와야하므로 지자체에서 내준다고 하기도 그렇다.



어찌되었든 돈 조금 있는 사람이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병이 좀 크다고 하면 알아서들 읍내나 시내로 병원들을 가신다.
하지만 이동성이 없는 노인분들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는 아직 보건소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다.



거기에다가 보건소를 애용(?)하는 한 부류가 더 있으니 어디가 아프든 주사와 약 먹으면 다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아 더 이상 보건소에서 진료가 어려워 병원으로 전원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내신다. 예를
들면 혈압약을 먹어도 수축기 혈압이 200가까이되고 당뇨약을 복용중이지만 혈당이 300이 넘는 분들...



오늘은 점심시간이 참 짧게만 느껴졌다. 둘째 녀석이 계속 울어대는 통에 밥을 코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첫째 녀석은 동생이
생긴 뒤에 밥투정이 더 심해졌다. 단칸 방에 인구밀도가 너무 높은 까닭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녀석을 달래서 1층 환자 대기실에 장난감과 함께 놀라고 두었다. 노인 분들이 오시면 인사성 좋게도 인사도 잘하고
환자분들도 귀여워하셔서 종 종 데리고 내려온다. 하지만 오늘은 괜히 데리고 내려왔다는 생각이들었다.



1시 5분. 얼굴이 시겋다 못해 검게 변한 젊은 환자 한분이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찾아왔다. 같이온 분들이 개에
물렸다고 설명한다. 환자에게 심하게 술 냄새가 풍겼다.



"진통제나 하나 놔줘.."



진료실에서 나가 접수하는 곳으로 가서 환자를 봤다. 개에 물렸다는데 진통제만 달라고 하니 접수하는 직원이 당황해
한다.



상처를 보여줄 생각도 하지 않고 주사나 한데 놔달라고 한다. 환자는 C8을 연거푸 내뱉는다. 물은 개가 광견병에는
안걸렸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분, 개에 물렸으면 파상풍에 걸릴 수도 있고 하니
병원에서 진료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술에 취한 환자는 이래서 보건소 안오겠다고 했는데 왜 끌고 왔느냐며 같이온 남, 녀에게 뭐라고 하더니 이내 나와 직원에게
욕과 함께 한 소리한다.



"내가 가만있나 봐라 면사무소에 신고한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3살박이 아들은 멀뚱 멀뚱 문밖으로 나간 아저씨를 바라본다. 문득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의사 면허딴지 이제
7년.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병원에서보다 더 처량하게 느껴진다.



별 생각없이 내 뱉은 말이였고 술김에 한 말였겠지만, 내가 의사로써 환자 치료를 안해줬다는 생각에 더구나 국가가 운영하는
보건소니 더 큰소리 쳤겠지.



보건소는 만성질환과 민간의료에서 이익이 되지 않아 소홀히 하기 쉬운 국민의 건강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길 건너편 병원에 가도 받을 수 있는 치료를 1년에 1번 올까 말까하는 환자를 위해 파상풍 주사를 들여놓았다가
폐기 처분한다면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기에 더 이상 들어놓치 않는다.



소아약들도 마찮가지다. 1살배기 3살배기 애기를 데리고 있지만, 정작 보건소에 소아약은 없다. 1년에 찾아오는 소아환자가
없다보니 폐기처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예산 낭비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건소를 찾아주는 분들께 이런 설명을 다 납득시키기란 노력해도 쉽지 않다.




개에 물려서 오신 술취한 남자 환자분께 ... 술에 취해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하신 말이기에 맘에 두지 않으려
합니다. 아마도 계속 고집부려서 보호자분들이 병원에 못데려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잘 치료받았기를 기대합니다. 혹시
개가 광견병이 의심되면 묶어놓고 몇일 봐야하는데 그런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네요. 별 탈없이 회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술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료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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