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7.17 수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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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해서 있을만한 병원이 없다.






아래는 '슬기엄마' 닉네임의 선생님이 작성해주신 글을 옮겨 보았다..
정말 동감한다...


“응, 잘 지내지?”


L은 고등학교 친구였지만 졸업 이후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었다. 서로의 일에 바빴던 탓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만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중환자실에 계시다기에 모니터에 뇌 CT 사진을 띄워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교뇌출혈이었다. 교뇌는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중요한 부위인데, 이곳에 크게 출혈이 생겼으니 의식도 떨어지고 사지가 마비되는 것이다.

신경외과에 입원 중이어서 내가 달리해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병변이 어디인지, 치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L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어머니, 좋아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 정도의 병변이라면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고, 그저 의식이 좀 깨어나서 사람들이나 좀 알아보는 정도만 기대해볼 수 있었다.

글쎄,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많이 좋아지시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고개를 저으려는 찰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L의 눈동자에 마음이 흔들렸다. 도저히 매정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응, 그렇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하지만 예상대로 L의 어머니는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수원에서 직장을 다니던 L은 매일 저녁 병원에 들렀다. 퇴근 시간이 되면 회식도 마다하고 1시간 정도 걸리는 병원에 와서 어머니를 간호하고, 병원에서 잠을 잔 다음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다시 1시간 걸리는 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런 생활이 몇 달이나 계속됐다. 말이 쉽지 그런 생활을 몇 달씩이나 지속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직장 동료도 L의 칼퇴근이 계속되자 점점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L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병원에서는 L에게 퇴원을 종용했다. 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대학병원에 더 입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L은 어떻게든 대학병원에 더 있고 싶어 했다. 돈이 얼마가 더 들어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좋은 치료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L은 나에게 말했다.

“집을 팔까 해.”
“무슨 소리야?”
“병원비가 많이 나오는데 더는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집이라도 팔아서 병원비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 비싼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 팔면 당분간의 치료비는 될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어. 그래도 단 하나뿐인 어머니인데 이대로 포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지금 사는 집을 팔아서 병원비로 쓰려고. 우리야 어디 전세라도 얻어서 살면 되잖아. 지금 어머니 치료를 중단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좋아지지 않으실 거라고, 계속 누워서 사실 테니까 이제 그만 어머니 생각보다는 네 생각을 하며 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L은 집을 팔았고 그 돈으로 당분간의 병원비는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의 독촉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흐른 후, L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이 일어나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L을 말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의사로서 환자의 예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에 불필요한 치료나 지출을 하지 않도록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교뇌 뇌출혈의 일반적인 예후일 뿐, L의 어머니에게 적용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비록 집을 잃고 직장에서의 민심을 잃었을지언정 L은 어머니의 치료를 계속한 것에 대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그가 중도에 치료를 중단했다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L과는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데, 배필을 만나게 된 인연 또한 어머니의 공이 컸다. 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 소개가 들어왔는데, 여자를 만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돼서 거절했으나 만나보기만 하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약속장소에 나갔단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매일 간병을 해야 하고, 그래서 지금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다 털어놨더니 상대방이 싫어하기는커녕 일요일에 어머니를 뵈러 같이 가면 안 되느냐고 묻더란다. 결국, 다음 주말에 같이 병원에 와서 함께 어머니 목욕을 시켜 드렸는데, 그런 일들을 마다치 않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결혼을 하게 됐다.

집을 팔아가며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 했던 내 친구 L.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께서 이어주신 짝이니, 앞으로도 복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현주  ansguswn@healthlo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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