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진료는 일반진료라
유방암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님 환자들도 본다.
응급실 갈 정도는 아닌데 뭔가 불편한 증상이 생겨서,
약이 떨어져서,
수액을 맞으려고,
직장인인데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돼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오신다.

혈관 육종으로 수술한 지 7년이 지난 29세 여자 환자.
2004년 기록을 보니 무시무시한 혈관 수술을 했다. 중환자실에도 오래 계셨다.
지금은 완치되었다. 육종은 병의 특성상 이렇게 오랫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녀는 속도 자꾸 더부룩하고, 유방에서도 뭔가 만져지는 것 같고, 몸도 붓는 것 같고, 쉽게 피곤하고, 뭔가 비특이적인 증상이 생겨서 불안해서 지난주 중에 내 외래에 오셨다. 그날 각종 검사를 다 하고 오늘 결과를 보러 오셨다.
유방암 양성 물혹이 있는 것 같아서 6개월 후에 다시 한번 초음파 검사를 해 보기로 했다. 그거 말고는 괜찮다. 걱정했던 갑상선 기능도 정상이다.
다 정상이네요.
신경성인가 봐요. 그녀는 배시시 웃는다.
난 그녀가 자기 몸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성 증상을 보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육종은 아마 이제 재발하지 않을 거에요.
직장 생활 잘 하시고요 병을 잊고 지내세요.
남들 하는 만큼 건강에 신경 쓰고 살면 되겠어요.
증권회사에 다니는 그녀는 자기가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털어놓으신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규직으로 직장생활 할 수 있는 게 어디에요. 잘 이겨내세요.
소화제를 처방해 드렸다.

재발된 두경부암으로 항암치료 중인 환자. 부인과 함께 오셨다.
차트를 보니 항암치료를 하는 주기마다 구토감,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시는 것 같다. 잘 못 드셔서 탈수되어 보인다.
지친 환자의 표정. 부인이 대신 증상을 말씀해 주신다.
새벽에 구토감 때문에 잠을 깰 정도라고 하신다.
지금이 한창 구토감이 심한 기간이네요.
종류별 구토제를 처방해 드렸다.
오늘 밤 내일 밤 모레 밤에 드시는 약은 노란색이에요. 아티반이라는 약인데, 이건 원래 수면제로 쓰이는 약이라 밤 10시-11시 사이에 드시는 게 좋아요. 30분 이내에 잠이 올 거에요. 구토감도 같이 억제해줄 수 있어요. 잠은 6시간 정도 주무실 수 있을 거에요. 그 정도 주무시면 최소한의 수면은 유지될 것 같네요. 잠을 충분히 푹 자면 구토감도 훨씬 덜하고요.
그리고 앞으로 3일간 하루 한 번씩 덱사를 드세요. 이 약은 하얀색인데 한 번에 4알씩 3일간 드시고요, 이 약을 먹을 땐 속이 약간 쓰릴 수가 있어서 속 보호하는 약도 같이 드릴게요.
그리고 맥페란은 한 끼에 2알씩 하루 세 번, 1주일간 드실 수 있게 처방해 드릴게요. 울렁거림이 가라앉으면 일주일 다 채워서 드실 필요는 없어요.
오늘 오셨으니 수액 맞으면서 주사로 구토감을 억제하는 약도 같이 드릴게요. 속쓰림 증상에 대해서는 보험은 안 되지만 효과가 빠른 주사약을 드릴께요. 보험이 안되기는 해도 별로 비싸지 않으니까 크게 부담은 안 되실 거에요.
화면에 약 사진을 다 띄워놓고 설명해 드렸다.
환자는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진료실에 들어왔는데,
약 종류 별로 원리와 복용 시 주의사항 이런 것들을 설명 드리니 오히려 생기가 돈다.
이렇게 먹으면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을 받나 보다. 부디 그렇게 남은 한 주간을 보내시길.

유방암은 2007년에
위암은 2011년에 진단받고 치료 중이신 환자.
요즘은 위암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먹는 약도 있고 주사약도 있다.
단백질 섭취를 열심히 하란 말에 열심히 고기를 먹었는데, 며칠 전 고기를 먹고 체했는지 복통으로 고생하셨다고 한다. 수원에 사는 그녀는 인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드시고 증상이 많이 좋아졌는데, 걱정되셔서 오셨다. 다음 주에 위암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괜찮을지... 지금은 증상이 없으시다고 한다. 그래도 배 사진을 한 번 찍어보았다. 배가 아팠을 거 같다. 변이 많다. 마그네슘을 드렸다. 배도 만져보고, 엑스레이 사진도 보여 드리며 설명해 드렸다. 환자는 평소 자신의 식습관에 대해 설명하시며 문제는 없는지, 어떤 점을 자신이 더 노력해야 하는 지 문의하신다.
잘하고 계시네요. 그렇게만 지내세요.
유방암을 한 번 이겨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위암 항암치료도 아주 꿋꿋하게 잘 받고 계신다.
생활 습관을 조절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병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나는 별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환자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입원 중인 환자의 보호자.
대전에 사는 그는 직장일 때문에 밤에 늦게 왔다가 새벽에 내려가신다.
그래서 날 제대로 못 만난다.
그들은 5년간 사귀었고 작년에 결혼하기로 했었다. 결혼을 앞두고 자궁경부암을 진단받았다. 진단 때부터 4기였다. 자궁경부암은 항암 치료 약제가 그리 많지 않다. 방사선 치료 병력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달에는 항암치료 하다가 혈변을 보고 방사선 장염이 악화되어 혈압도 떨어지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 환자는 이제 33살. 항암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병의 자연경과를 항암제가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고생만 하고 약효는 없는 게 아닐까? 걱정이다.
보호자를 외래에서 따로 만나 지난주에 찍은 CT랑 지난 달에 찍은 CT를 보여 드리며 설명하였다. 지난달보다 상황이 약간 더 나빠졌다고. 이번에 항암제를 바꿔서 쓰고 나면 더 이상 쓸만한 약은 없을 것 같다고. 더 이상의 수술도, 방사선도 어려운 상황에서 항암치료가 유일한 치료가 될 텐데, 솔직히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해 드렸다. 보호자는 잘 알겠다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달라고. 가족들도 각오하고 있다고.
그는 아직 그녀의 법적 남편이 아니다. 식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병간호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내가 남편이니까 병원비도 내가 다 낼 거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달라고 하신다. 대전에서 차 몰고 밤중에 왔다가 새벽에 내려가는 그를 몇 번 보았다. 환자의 엄마는 그를 사위라고 부르지 않는다.

세 시간 동안 13명을 진료하였다. 평일에는 1시간에 13명 이상 보아야 한다.
미국식 진료.
충분히 진료 시간을 확보하고
환자가 병 말고도 이것저것 말하는 거 다 들어주고
나도 병에 대해, 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나도 별로 힘들지 않고 좋다.
원래 내 환자가 아니라서 그들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최선의 진료, 최고의 진료를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다만 내가 원래 주치의가 아니니 그들과 라뽀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오전 진료를 보고
신촌에 나가 머리도 깎고
여유로운 마음, 새로운 마음으로 주말 스케줄을 시작해본다.
나의 주말은 이제 시작이다.
진료 이외에 모두 미뤄두었던 일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그래도 토요일은 토요일.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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