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선생님. 안된다 하지 말라는 말씀만 하지 마시고요, 그럼 무얼 해야 하는지 말씀을 해주세요.”


환자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불만 중 하나는 의사들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하지, 도대체 무얼 하라고 이야기는 잘 안 해준다는 것이다.  

“선생님, 부산 사는 우리 딸래미가 이게 그렇게 몸에 좋은 거라고 하면서 갖다주는데, 이거 먹어도 됩니까?”
“선생님, 미국 사는 친척이 OOO를 먹어야 기운이 난다고 보내주었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미국의사들이 추천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외래를 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환자분 입장에서는 한 번 질문이지만, 나로서는 수천 번 듣는 소리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대개 외래 진료가 끝나고 환자분들이 나가려고 일어나면서 하게 된다.

“별 도움 안 돼요. 드시지 마세요. 괜히 간 수치만 나빠져요. 간 수치 나빠지면 항암 못해요.”  

내 외래는 시간이 밀리기 일쑤여서 (이 기회를 빌려, 진료가 지연되는 것을 기다려 주시는 환자분들께 사과의 말씀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컴퓨터에는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고 빨간 경고화면이 뜨고, 밖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환자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자세히 설명해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대개는 “하지 마세요.” 라고 짤막하게 대답을 하곤 한다.

 그러면 환자분들은 대부분 실망하는 표정을 짓게 된다. 그나마 나는 의사 선생님 말 잘 듣는 환자가 되고 싶고,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런거 혼자 몰래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허락받고 먹고 싶어서)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고민 끝에 물어본 건데, 의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지 말라는 말만 하면, 대부분의 환자분은 실망하게 되어 있다. 이야기 안 하고 몰래 먹을걸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몰래 드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선생님, 이거는 비타민이어서 괜찮다고 하던데요.”
“선생님, 다른 환자분들이 이거 먹고 엄청 효과를 봤다고 하던데요.”
“선생님, 이거 우리 딸이 큰맘 먹고 비싸게 산 건데, 그냥 먹으면 안 됩니까.”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하지 않으면, 많은 경우에서는 이런 식으로 환자분들이 꼭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며 읍소를 하기도 한다. 가족과 보호자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뭔가라도 환자분께 해주고 싶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큰맘 먹고 산 거니까 너무 그렇게 냉정하게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이러면 보호자들이 환자분을 위해 내가 OO라도 했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경우도 있다. 우리 엄마한테 평소에 속만 썩였고, 우리 엄마는 늘 고생만 하셨는데, 엄마가 암에 걸려서 항암 치료받으시는데, 멀리 사는 자식 된 도리로, 비싼 고가의 건강보조식품이라도 사드려야 자식 된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심정도 한몫한다. 물론 비쌀수록 자식 된 도리를 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도 효과가 입증되어 있지도 않고, 잘못하다가는 부작용으로 고생할 것이 우려되는 검증 안 된 건강보조식품을 드시도록 방조할 수는 없는 없는지라, 의사 된 입장에서는 드시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이 환자분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는가 보다.

“선생님, 안된다 하지 말라는 말씀만 하지 마시고요, 그럼 무얼 해야 하는지 말씀을 해주세요.”

그럴 때면, 나는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지 마시고, 그럼 제가 숙제를 내줄게요. 2주 뒤에 저랑 다시 외래에서 뵐 텐데요, 2주간 엄마랑 매일 30분간 같이 시간 보내세요. 걷기 운동 같은 거 하셔도 좋구요”
“저는 직장 다녀야 해서 엄마랑 매일 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요.”
“퇴근 후에 하면 되잖아요. 그것도 못하면서, 비싼 건강보조식품만 사서 엄마 먹이면, 그게 효도인 것 같아요?” 

이렇게 무안을 주면, 대부분은 더는 말을 안 꺼낸다.  

환자분을 위하는 길은 어려 가지가 있다. 외래에 같이 와 주는 것, 비싼 건강보조식품 사 드리는 것, 치료비를 대신 내드리는 것… 이 중에서 가장 으뜸은…

아마도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안된다 하지 말라는 말씀만 하지 말고, 그럼 무얼 해야하냐고 물어보는 분들께, 나는 환자분과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라고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함께 보낼 수 있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기에…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