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일반적인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와의 관계와는 매우 다릅니다. 보통 환자는 약자이고 의사에게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질병의 종류에 따라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매우 다릅니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 외과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피부 미용을 하기 위해 내원한 환자와의 관계와는 당연히 다르겠지요.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과대학에서도 이러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환자에게 가져야하는 태도에 대해 교육을 하는데 환자에게 감정 이입이나 공감(empathize), 연민(compassion)을 가질 수는 있지만, 감정적으로 동일시하여 객관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이러한 교육보다는 실제로 부딪히면서 배우게 되는 면이 많지요.


최근 영국의학저널인 BMJ에 실린 하버드의대 정신과 조교수인 Micheal W. Kahn 박사의 글을 보면 이러한 교육의 효과가 그리 썩 좋지는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감정 이입이나 연민을 가지는 것을 Compassion based Medicine 이라고 한다면 이런 근본적인 접근 보다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 가를 가르치는 Etiquette based Medicine 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Emily Post's Etiquette


에티켓(Etiquette)이란 프랑스 고어(古語) estiquer(붙이다)에서 유래된 말로 알려져있습니다. 신분에 따라 편지등에 붙이는 꼬리표가 다양하고 이런 것이 궁중 규범으로 작용했는데 이런 것이 예의범절이란 뜻의 에티켓이 되었다고 하네요. 즉, 에티켓은 어떻게 행동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의미합니다.


환자에게 느끼는 공감, 연민, 감정이입등 원론적인 교육으로는 환자들이 원하는 행동으로 연결되기 힘들기 때문에 의학에 있어 에티켓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환자들이 의사나 의료진에게 느끼는 분노나 불만은 '내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본다.', '화난 얼굴이다. 웃지 않는다'등 매우 단순한데부터 시작합니다.


Kahn 박사는 중환자실(ICU)에서 획기적으로 감염을 줄였던 체크리스트(Check list - Pronovost et al.)의 활용 사례를 들어 에티켓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병원에서 활용하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병원의 상황이나 문화에 따라 다르고,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있지 않지만 한 가지 예로 들어본 문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입원 환자 기준)


1. 환자의 병실에 들어갈 때 환자의 대답을 듣고 나서 들어간다.
2.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신분증 (ID)나 뱃지를 보여준다.
3. 악수를 한다 (필요하면 글로브를 착용한다)
4. 앉아서 이야기하고 필요하면 미소를 짓는다.
5. 간략하게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설명한다.
6. 입원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묻는다.


미국은 다인실이 없고 대부분 1인실이라는 점이 국내와 매우 다릅니다. 국내의 경우 다인실이 대부분이고 보호자의 공간도 없기 때문에 사실 의료진이 침대 옆에서 앉아서 이야기할 공간이 없죠. 그러나 스스로 소개하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입원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묻는 것 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에티켓의 강조는 생각의 변화, 인식의 변화를 먼저 꾀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를 먼저 유도하고 그에 따르는 환자만족, 전문가로써의 자세에 대한 통찰을 유도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서비스직이나 이런 에티켓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한 시대죠.


그러나, 백화점이나 텔레마케터의 에팃켓과 의사가 가져야하는 에티켓은 상당히 다릅니다. 단순히 친절하라는 정도에서는 규약, 규범으로 친절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다양한 환자의 질병 상태, 죽음을 앞두고 있을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등 각각의 경우에 따른 규범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죠. 때문에 의사들의 에티켓 교육은 단순히 친절 교육 업체에 맡겨둔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의사와 의료진에게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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