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 여자 환자.
유방암이 재발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뇌로 전이된 것도 2년이 넘었다.
환자는 늘 혼자 병원에 다닌다. 그리고 항상 불평불만이 많다.

"왜 기침이 안 멈추냐? "
"폐에 병이 있어서 그래요. 일단 증상이 좀 가라않도록 약을 처방해 드릴께요."
"코데인? 그거 먹어도 낫지도 않아. 처방하지 마. 집에 많아. "
...
"항암치료는 언제까지 할거냐? "
"지금 치료약에 반응이 좋은 편이니까 당분간 유지할 생각이에요. 별로 독성도 없잖아요. 언제까지 치료할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병이 나빠질 때까지 이 약으로 치료하다가 나빠지면 다른 약으로 바꾸는 거라고 몇번 말씀드렸지만 별로 염두에  두시지 않는 것 같다.)
...
"왜 이렇게 검사는 자주 하냐?"
"최소한 3개월에 한번은 해야 되요. 무엇보다 약을 쓰면서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게 필요하죠."
"대충 보면 알지 않냐?"
"아니에요. 그렇게만 판단할 수 없어요. "
"그래도 싫다. 자주 검사하지 말아라. CT찍는 것도 너무 힘들다."
"솔직히 보험문제도 있어요.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지 않으면 삭감되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건 저도 사진을 찍는게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죠."

매번 외래에서 이런 식으로 대화한다. 아주 힘들다.
다른 보호자도 없이 환자가 혼자 오는데 매번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지치고 짜증도 난다.
무슨 검사 한번 하자고 말하는 게 눈치 보이고 어렵다. 내가 이렇게 사정해가면서까지 치료해야 하나?
그런 욱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 환자가 어제는 제 시간보다 늦게 왔다.
진료를 마치고 환자를 기다려야 했다. 환자는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불평이다. 차가 막혔다는 둥, 날씨가 너무 춥다는 둥, 병원 다니기도 지겹다는 둥, 그만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둥. 나도 그 환자 기다리느라 컴퍼런스도 못 가고 있었는데 또 화가 욱 하고 나려고 한다.

환자가 말 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었다. 환자가 계속 말한다.
김장하느라 몸이 너무 힘들었다. 집안일 다 하고 지내니 아무도 내가 환자인지 모른다.
남편은 왜 그렇게 병원을 자주 다니냐? 남들은 6개월에 한번씩 검사한다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자꾸 검사하냐?
병원 그만 다녀라 뭐 그런식으로 계속 환자한테 뭐라고 하고
당신은 병원에 오면 일단 의사 말을 들어야하니까 시키는대로 검사를 하긴 하지만, 맨날 집에서 자기한테 뭐라고 하니, 이렇게 할수도 없고 저렇게 할수도 없고 양쪽에 끼어서 죽겠다는 것이 그 한탄의 핵심이었다.

남편은 환자의 병원 치료에 대해 매우 비협조적인 것 같고
자식들은 회사 다니고 자기 일 하느라 바빠서 자기가 재발된 유방암으로 치료받고 있는 줄도 모를 거라고 한다.
환자가 워낙 일상적인 기능을 다 수행할 정도의 컨디션이 되다보니 가족들이 무심한 상태인 것 같다.
자기만 살려고 아둥바둥 하는것 같다고,
이렇게 추운 날 병원 왔다갔다 하는 자신이 처량하다며 비로소 말을 맺는다.

나는 별 말 없이

"가족들 다 오라고 하세요."
"다 바빠서 병원에 올 시간 없어요."
"그러면 토요일 낮에 오세요. 제가 따로 면담할께요."

다음주 토요일에 가족 면담을 따로 하기로 했다.

이 환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환자도 아니다.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좋아하는 환자와 별로 안 좋아하는 환자가 있음을 고백한다) 평소에 내 심기를 많이 긁어놓았다. 치료에 협조도 잘 하지 않는다. 내가 애걸복걸하며 치료하는 것 같아 평소 나도 힘들었다.

그래도 가족을 만나야 겠다.
환자가 좀더 존중받고 배려받고 열심히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거라고 한번은 설명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가족을 만나겠다고 하니 환자 눈이 휘둥그래진다.
앞으로 그에게 남은 기간,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병원 다니실 수 있게 가족의 협조를 구해야겠다.
병원 다니는 것도 힘들고 항암 치료받는 것도 힘들고 증상이 있어서
힘든 환자를 위해서는 항암제 말고도 필요한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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