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진학이 유래 없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과거에도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유별나게 더 힘든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겨 비단 이런 편중 현상을 조금 완화해주고 정상화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만, 지금 양상은 입시의 연장만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학생들이 의과대학을 열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현실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시도가 가장 많지 않을까요? 의학이나, 환자와 질병과 함께 살아야하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그랬던 것 같거든요. 대부분 의대 진학하고 나서 많은 고민하고 그 고민 끝에 힘들게 전공을 바꾸기도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은퇴를 앞둔 명망 높은 의료계 대 선배님들께서나 하실 이야기기 때문에 이야기 꺼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가 느낀 점들 위주로 가볍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1. 절대 지루하지는 않다.
혹시 의학드라마의 인기가 입시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겠죠?

의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을 먼저 이야기 꺼내야할지, 아니면 의료계에 팽배해 있는 불만을 토대로 하여 의사가 되지 말아야할 이유를 먼저 이야기 해야할지도 참 고민이 됩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이 좋겠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면 겪게되는 긍정적인 일들에 대해 먼저 써봅니다.  의대 지망하시는 분들이나 의대생으로 있는 분들, 그리고 현직에 있는 의사선생님들께서 댓글로 공감 또는 빠진 부분이 있다면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절대 지루하지는 않다.

뭐 이런게 장점이냐고 할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의사란 직업은 평생(?) 다이나믹한 직업입니다. 물론 본인이 원하지 않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위치를 찾는다면 가능합니다만, 질병과 환자와 함께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예상과 달리 악화되는 환자 만나 잠을 설치는 일도, 예상과 달리 호전되어 기쁜 일도 흔히 있습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과를 전공으로 선택한다면 하루에 여러차례의 CPR 콜과 함께할 수도 있고 여러분의 손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환자를 구해내는 짜릿한 경험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비단 임상에서 진료를 볼 때 뿐 아니라 의과대학에서 수많은 시험과 난관도 다이나믹합니다. 하루의 결석으로 앞으로의 진로가 달라지는 불상사도 생기고, 우연히 선택한 선택 실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기도 합니다. 또 전공의 시절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부분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불행한 시간을 보내기도하고, 처음 쓴 논문이 유명 학술지에 게재되는 기쁨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만가지 상상할 수 없는 황당한 일들도 겪게 될 겁니다.

어떤 과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지루한 시간은 없을 겁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초조함과 스트레스와 함께 산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루함이라는 것이 인간에 있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동의한다면 의과대학 진학이야 말로 가장 우선 순위에 넣어야할 진로입니다.


7. 다양해진 진로
물론 하우스처럼 천재적(?)이라면 일반적인 의사의 삶이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2. 훌륭한 환자 그리고 동료를 만날 수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남기는 깊은 인상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무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끔은 내가 환자가 된다면 이렇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훌륭한 인격과 인내심을 가지신 분들께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뇨기과 전공의 시간 4년간 암을 투병하시던 많은 분들 중 상당 수의 환자와 그 가족들은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암환자뿐 아니라 선천적인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살피는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항상 감동적이죠.

인간 극장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 속에 조연이나마 계속 출연하게 된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러한 현장에 감정적으로 여러분들을 지지하거나 조언해주는 좋은 동료도 만날 수 있습니다. 비단 같은 의사뿐 아니라, 수술할 때 꼭 이 간호사가 아니면 안된다고 이야기할 만큼 훌륭한 수술실 간호사나, 견디기 힘든 인턴, 1년차 시절 실수를 덮어주던 병동 간호사등 잊지 못할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때에는 친하기만 했던 형이였던 사람이, 병원에서는 엄격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이 되는 묘한 경험도 하게 될 것이고, 명의로 존경받는 교수님 밑에서 수련받는 경험도 하게되겠죠. 이런 만남은 평생 지속이 됩니다. 여러분께서 사회성이 매우 부족하지만 않는다면요.


3.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들의 연속

의과대학에 비교해부학 시절 토끼나 닭을 해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체 해부학, 생리학 실험을 거처 임상 실습까지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죠.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만, 의대 재학중에는 그러한 놀라움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낙(?)이 였습니다. 지금도 산부인과와 정신과 임상 실습의 경험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의사가 되고나서도 겪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처음 직접 수술을 하던 날이나, 수술한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한 일, 자축하며 소주를 마셨던 일등 하나 하나 배워가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죠.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간직한 환자들을 만나는 일들부터 해외 학회를 통해 의학 교과서를 집필한 노교수를 보는 일등의 놀라운 일들도 일어납니다. 물론 학문적으로 관심이 없다면 노교수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공공 장소나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를 만나는 일은 생각외로 그런 경험한 의사들이 상당 수 있다는 것을 안 후부터는 놀라운 일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한 비행기에서 4-5명을 만났던 저의 신혼여행 처럼 인원수가 한꺼번에 많다면 비교적 놀라운(?) 경험에 넣어 줄까요? 아니면 의사가 나 혼자라고 생각해서 나섰는데 알고 보니 해외 심장학회 참석하는 교수들이 단체로 탑승하고 있었던 일 정도는 되야 놀랄만한 일이겠죠.


4.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확인할 수 있다.

공부를 좀 했다는 학생들도 자신의 학습 능력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의과대학 커리큘럼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주로 암기와 인내력을 테스트받게 됩니다. 입학 전에는 누구나 주목받는 똑똑한 인재라고 느꼈겠지만, 입학 하고 나면 다시 그 가운데 서열이 생기는 신기한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공부를 비교적 잘 한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의학 논문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바다에서 표류하는 기분이들게 됩니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즐겨한다면 의과대학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이런 학습, 학문적인 한계 상황 이외에도 임상 실습 속에서 받는 상당한 스트레스는 왠만한 상황에서도 쉽게 놀라지 않는 인격을 수양하게 만들어주죠. 부작용으로 작은 일에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새가슴이 되기도 합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기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인내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 과정을 잘만 거친다면 훌륭한 인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반대로 황폐해 질 수도 있습니다.

의대에 들어올때 선망하던 과와 졸업 후 나갈 때 선택하는 과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5. 존경 받는 직업, 안정적 경제 여건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만, 의대 또는 의전원 지망생을 둔 부모님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체로 존경을 받는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실제 사회속에서 '의사'라고 하는 직업은 존경할만한 직업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경제적으로도 대체적으로 안정직에 속합니다.

세부적으로 본다면, 투입되는 노동력과 위험 그리고 그에 대한 상응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또 의사가 존경을 받는 직업이냐는 부분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이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의사란 직업은 사회 속에서 그 개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약간의 존경과 많은 관심을 받는 직업입니다.

과거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도 대도시가 아닌 작은 인구의 시골에서는 의사는 소중한 존재이며, 인격적으로 모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존경 받죠. 봉사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업입니다. 물론 존경의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6. 의학을 연구하고 싶다면 더욱 좋은 선택

과학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말하느냐는 학문이죠. 때문에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원론적으로는 과학을 하기 위해서 대학을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만, 최근의 정보의 양이나 시행착오등을 생각한다면 좋은 정규과정 이수는 필요하죠. 과학이 그렇듯, 과학을 기반으로한 의학도 열린 학문입니다. 사람 몸에 칼을 대거나 약을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허가제지만요. 혹자는 의학이라고 하면 의사들만이 연구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의과학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해외의 경우에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가도 자기 발전을 위해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고 다시 실험실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국내에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의 취지 중 하나가 그런 목적이 있으니 앞으로 지켜봐야겠죠. 의학 분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특히 임상 상황을 이해하는데에는 의과대학 진학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신 진학해서 국내 기초학 현실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 확률이 99%라고 볼 정도로 썩 상황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7. 다양해진 진로

진료실에서 벗어나서 활동하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근거 중심의 의학(EBM, Evidence Based Medicine)의 시대다 보니 다양한 임상 연구로 그 효과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리 목적을 하지 않는 의학자의 손에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상당 수의 경우 제약 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의료윤리학자들의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의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부분을 취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기에 앞으로 제약 산업에 있어 임상 연구부분은 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에게 또 다른 진로로 보편화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약산업에서 직접 임상연구를 시행하기도 하지만, 임상 연구만 용역을 받아서 시행하는 다양한 세계적인 임상연구 업체들의 의사 수요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의사뿐 아니라, 약사, 간호사등의 인력을 많이 모집하고 있죠. 경력자들은 헤드헌터들에게 매번 좋은 조건에서 이직 제의를 받는 직종이기도 합니다.

이런 임상연구뿐 아니라, 전문 기자 영역도 앞으로는 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학뿐 아니라, 과학의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기자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필요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많은 경우에 있어 의학 전문기자를 먼저 채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다양한 진로는 임상의사의 길을 걷는 것 보다 쉽게 택할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더 많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가능한 일이죠. 예전 한 의학 전문지 편집국장님께서 '의사 자격증만 가지고 지원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의대 재학 당시 사회성도 떨어지고 주위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의학 전문기자 지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자, 임상의사의 길만큼 의학 전문기자의 길 선택도 좋은 인재들이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기초학 교실의 교수님 중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두서 없이 이야기 하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호응이 좋으면 2 탄으로 정반대의 입장에서 쓴 의대를 지원하지 말아야할 이유들을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가볍게 읽어주세요. A4 한 장 이상의 댓글은 사양하겠습니다. :)



관련글 :

2007/12/17 - [칼럼과 수다] - 의사의 역할 (Role of the doctor)

2008/01/08 - [칼럼과 수다] - 의료폐기물에 담긴 아픈 기억

2008/01/10 - [건강 뉴스] - 의학드라마를 통한 병원 홍보효과

2008/01/20 - [칼럼과 수다] - 3분진료, 피할 수 없는 현실

2008/01/30 - [칼럼과 수다] -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의사와 환자

2008/02/12 - [칼럼과 수다] - 생명 - 누군가의 권리, 누군가의 의무

2008/02/27 - [칼럼과 수다] - 사실(Fact)의 해석과 근거의학(EBM)

2008/03/17 - [건강 뉴스] - 항공기내 응급처치, 현실적 한계

2008/04/02 - [소아 건강] - 소아과에서 부모가 하는 실수들

2008/05/09 - [칼럼과 수다] - 의학전문대학원, 문제 없을까?

2008/05/09 - [칼럼과 수다] - DNR (Do Not Resuscitation)

2008/05/12 - [칼럼과 수다] - 과학과 정치, 경제, 문화

2008/05/23 - [건강 뉴스] - 의사의 근무시간, 중환자 치료에 어떤 영향?

2008/05/29 - [칼럼과 수다] - 의료인의 흡연,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2008/06/15 - [건강 뉴스] - 의사에게 필요한 에티켓

2008/06/17 - [닥블, 헬스로그 소식들] - EBS 다큐人 - 카페로 간 의사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