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19 목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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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VIP 환자는 누굴까?



매우 중요한 사람. Very Important Person. 줄여서 V.I.P.

비단 치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라면 사실 의사가 나를(or 나만) 좀 더 신경써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진료적인 부분이든, 치료비에 관한 부분이든지요. 사람마음은 다 똑같은가봅니다. 저도 환자/보호자로써 병원에 가게 되면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주변 소개 많이하는 환자 = VIP 환자?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 측에 여러 가지 어필을 하게 되는 듯합니다. 주로 병원 측에서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울만한, 즉 먹힐만한 부분들이 어필하는 대상이 되지요.
자신의 영향력, 장래 주변에 소개할 가능성등을 염두에 둔, ‘내가 OOO이다’, ‘내가 OOO하는 사람이다’라는 어필도 하게 되는 case도 있고, 주변 지인들을 몇 명 소개한(혹은 앞으로 소개할) 경우, 자신이 병원에 얼마나 소중한(혹은 앞으로 소중할) 충성 고객인지를 어필하게 되는 case도 있지요.
정말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본인의 예상 치료비용이 많이 나오는 환자’보다 ‘주변에 소개를 많이 해주고 지인들을 데려올 환자’가 더 VIP라고 이야기합니다.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viral 마케팅이 되겠죠. 실제로 많은 병원들이 이 부분에 집중을 하고, 병원 마케팅의 ABC입니다.
‘치과의 입장’에서는 이런 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지만, ‘치과의사의 입장’에서는 모두 다 같은 환자일 뿐입니다. 진단이나 치료가 달라질 이유도 없고. 우리 치과에서는 더 잘해드릴 것도 못 해드릴 것도 없어요. 그냥 마음만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렇게 여기에 써도 될까..?)
그냥 치과의사라는 프라이드 하나로 내가 하고 싶은 진료를 하려고 작게 차린 치과니까 진료외적인 이유로 진료적인 부분을 기대하시면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사회적 VIP 환자 = VIP 환자?
아, 또 하나. 엎어지면 시청과 남대문이 코 닿을 거리에,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오피스街여서 그런지 OO사 부사장, OO은행 부행장, OO건설사 사장, OO협회 회장, 전직 외교관 등의 환자분들도 간간히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회통념상으로도 부합하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VIP환자죠.
이런 분들은 본인의 스케줄을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예약도 비서(!)가 전화로 잡고 진행하기도 합니다. 별로 목에 힘을 주시거나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없고 그냥 다른 사람처럼 슥 오셨다가 치료받고 슥 가시는 경우가 많고.
치료하면서 느낀 것은, 치료 계획에 대한 이해도나 협조도도 확실히 좋으시고, 치료 계획, 진료 스케줄 등등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분들에서 협상 능력이 특히 대단하시더라는 점정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의 치과에서 일할 때에는 빌딩 주인, 주변 큰 음식점 사장, 시장 상인 조합 간부 정도면 VIP였고, 강남/청담에서 치과를 하는 수련1년 후배 선생님의 경우 OOO, XXX등등의 연예인들을 치료했다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이게 바로 지역적인 특성인가 봅니다. 
그냥 작은 치과를 꾸려나가는 원장 입장에서는 어떻게 알고 오신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마 제 치과를 선정했을 비서분께도 사실 감사하고) 치료받은 환자분께도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치과의사 입장에서는 그냥 모두 다 같은 환자일 뿐입니다. 진료 계획, 치료 자체나 치료비용도 달라질 것도 없고.


가족 = VIP 환자?
그러고 보면, 남들은 충분히 VIP라고 신경쓸만한 환자를 그냥 남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이 우리 치과의 VIP 정책인가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 치과는 모든 환자를 가족처럼 대한다는 뻔 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하. 제 가족처럼 대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가족들에게 더 못해드리니까 말입니다.
제 생각에 제 가족들은 예전에는 거의 마루타였고, 지금도 Non-VIP에 가깝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치과의 온갖 술식들을 배우면서 뭔가 처음 해보는 것들(!)은 거의 다 제 가족들에게 먼저 해본 것 같네요.
그러다보니 부모님, (지금은 와이프가 된)여자친구를 데려다가 치료한다고 주변에서 여러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어설픈 손으로 부모님 혹은 여자친구한테 못할 짓하는 거 아니냐고 진심으로 뭐라고 하기도 하고.
제 입장에서는 치료에 문제가 생겨도 소송에 휘말리거나 일이 커질 소지도 없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내 치료에 문제가 생기는지, 어떤지를 평생에 걸쳐 Follow-up하고 관찰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가족들에게 민폐;;;
흠흠… 뭐 이제는 그것도 다 지나간 일이고 이제는 정말 선의로 주변 가족들까지 되도록 봐드리려고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도 예약이 겹치거나 좀 바쁠 것 같으면 만만한 게 가족이라고 예약을 병원 사정에 맞춰 변경하기 일쑤고.


안 풀리는 환자 = VIP 환자!
치과의사가 다른 일반 환자보다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 쓴다는 의미에서 볼 때, VIP환자는, '치료가 잘 안 풀리는' 환자가 아닐까 합니다.

증상과 소견이 애매해서 두세 가지 진단이 의심되고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 case
치료에 따른 예상했던 결과가 안 나오는 case
치료 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case
낮은 확률로 예상했던 일이 불행히도 결국 발생해버렸을 경우 등등

사실 치과를 하다보면, 치과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case들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식사 후 커피한잔 할 때나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나, 밤에 잠 드는 베개 머리맡에서도 떠오르는 건, 뭔가 잘 안 풀리고 찜찜한 환자들입니다. 다음에 오실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뭐라도 좀 더 찾아보고 준비하고 신경을 쓰게 되지요.
대학병원에서 멸균이나 어시스트를 제일 신경 썼던 것은 HIV(+)환자들이었고, 의국에서 밤새 교과서에 논문 뒤지게 했던 것도 치료가 뭔가 애매하고 어렵고 잘 안 풀리던 환자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런 환자들이 치과의사 평생에 잊지 못할 환자들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걸 보통 VIP라고 하지는 않겠죠.^^
흠흠…
정리해보니  살짝 이상해지기는 합니다만, 일단 환자 입장에서는 기억에 안 남는 그냥 무난한 환자가 되는 것이 제 치과에서는 제일 좋을 듯합니다. 만약 치료가 잘 안 풀린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우리 병원의 VIP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면 귀싸닥 한대 맞겠지...;;;;;)

<3줄 요약>
1.치과의사로서 진료 외적으로는 구애받고 싶지 않음. 당연히 내 치과에서는 VIP우대 없음.
2.치과의사를 키워내느라 가족들은 오히려 더 고생했음. 서로를 위해 '가족 같은' 대우는 해드리면 안됨.
3.치과적으로 잘 안 풀리면 굉장히 신경 쓰고 고민함. 근데 이것도 VIP라고 해도 되나? ;;;;;;

_______
ps.
개원이다, 집안 사정이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이유로 오래간만에 포스팅합니다.^^ 추위도 한풀 꺾인 나른한 토요일 오전에 진료실 컴퓨터 고장으로 예정에도 없던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기사님이 고쳐주시는 동안에 글을 쓰게 되네요. 정리해놓고 보니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너무 어설프게 객기부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일단 당분간은 이대로!

morua  mor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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