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탄생 200주년이 되는 2009년을 전후해서 진화론을 다루는 다양한 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책을 읽다보니 유전자수준에서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리처드 도킨스교수의 <이기적 유전자>가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읽고난 느낌을 정리해보면, 의학을 전공한 도움과 최근 읽은 진화론 관련 서적들을 통하여 얻은 동물행동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덕분에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생각이 자꾸 꼬이면서 읽기에 지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1859년 찰스 다윈이 진화의 이론을 세울 당시의 과학이 쌓아온 방법론 등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다윈의 진화론이 학계나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넘게 이루어온 유전학을 비롯하여 생물학적 발전은 다양한 측면에서 진화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빌면, 1976년 <이기적 유전자>가 출판된 이래로 30년을 넘겨오면서 지금까지 책의 내용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출간 이래 제기된 비판을 수용하여 1989년에 출간한 제2판에서 보주를 달아 초판에 제기된 비판과 초판 이후의 연구성과를 보충하는 주를 달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읽어가면서 생각이 꼬이게 된 이유는 아마도 책 뒤편에 따로 둔 보주를 들추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 책읽기를 마친 다음에 한번에 읽을 요량으로 건너 뛴 탓이라고 핑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보주까지 읽고나서의 느낌은 역시 불편하다입니다. 본문을 손대지 않고 보주로 땜질하는 것으로 독자들이 충분하게 이해할 것이라 믿는 것은 저자의 오만함이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입니다. “가장 잘된 프로그램도 아직 명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113쪽)”라고 적었을 뿐 아니라 보주에서도 1988년 10월의 기사를 인용하여 체스 프로그램의 미래를 점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벌써 16년이나 된 1996년에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 블루는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에게 한 판의 승리를 따냈는데, 이 정도면 명인의 경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초판의 서문에서 저자는 “나는 동물행동학자이고 이 책은 동물의 행동에 관한 책이다.”라고 이 책의 성격을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장을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지구상의 생물의 진화에 대한 기본적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당신들은 진화를 알아냈는가?”라고 물어볼 것이라 생각합니까? 우주의 다른 별에서 지구까지 올 정도로 고도의 과학수준을 가진 생물체라면 우주의 생성원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요? 도킨스교수가 말하는 진화의 개념이 우주의 시원에까지 미치는 것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이어서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을 설명하기 위하여 개체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개체의 이타주의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생물은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진화한다”는 집단선택설에 근거한 지금까지의 설명이 오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체선택설에 따르면 이기주의적 개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개체가 잘 살아남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읽어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를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기주의적 개체만으로 구성된 생물계를 결국 파국을 맞기 마련이므로 이타주의적 개체을과 규형을 맞추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시지구환경에서 정말 우연히 만들어진 유기물분자 가운데 스스로를 복제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 오늘날 지구상에 다양한 생물들이 출현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인데, 생물종을 연결하는 존재가 충분치 않아 진화론이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잇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분자생물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한 유전학의 발전은 드디어 생물체의 유전자배열을 해독하기에 이르렀고, 그 유전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일종의 휴면계좌라 할 수 있는 이런 기능하지 않는 유전자들에 진화의 증거가 숨겨져 있는 것 아닐까요?

제3장 ‘불멸의 코일’편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생존기계다”라고 정의한 부분에서도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물을 단지 ‘자기복제자’라고 명명한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생기가 넘치는 생물체를 피동적인 기계에 비유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생물체에 대한 저자의 인식에서 밈(meme)이라는 문화를 전달하고 모방하는 복제단위를 창안해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화는 인간에 고유할 수도 있지만, 생물계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무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킨스교수가 이와 같은 문화도 모방되고 복제되어 전파되고 전달될 수 있다는 개념을 담은 단어로 밈(meme)이라는 용어를 새로 제안한 것으로 유전자(gene)과 발음이 유사한 그리스어의 어근으로 만든 미멤(mimeme)을 줄여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등이 밈의 예가 되겠는데, “밈풀에서 펴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323쪽)”는 도킨스교수의 설명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이상임 옮김
540쪽

2010년 8월 10일

을유문화사 펴냄

목차

옮긴이의 말

30주년 기념판 서문

개정판 서문

초판 권두사

초판 서문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2. 자기 복제자

3. 불멸의 코일

4. 유전자 기계

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6. 유전자의 행동 방식

7. 가족계획

8. 세대 간의 전쟁

9. 암수의 전쟁

10.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11. 밈Meme-새로운 복제자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13. 유전자의 긴 팔


보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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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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