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무려 4시간이나 나를 잠못들게 한 한 환자가 있었다. 사연인 즉슨 저녁에 거하게 한잔 걸친 후 가게 밖을 빠져나오다 넘어져 땅에
머리를 부딪혔고, 이후 두통과 함께 머리의 좌상을 주소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왔었다. 이미 만취해있는 상태였던 그와 부인은 응급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진상은 다 보여줬다. 스스로 걸어서 찾아와서는 모든 검사를 거부하고 가겠다고 하지 않나, 병원 집기를 던지거나 의료진을 향해 서슴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다. 응급의학과에서 외상성 출혈 및 그로 인한 상태 악화 등을 경고한 후 뇌 CT 등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으나, 막무가내로
화를 내며 그냥 집으로 가겠다고 제 발로 걸어 나간지 두시간만에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응급실을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이후 진행한 뇌
CT에서 전두엽에 타박성 출혈 소견이 관찰되어 신경외과로 연락이 온 환자였다.

CT 촬영 후 보호자에게 상태가 심각함을 알렸고,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경과 변동시 머리를 열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음주 상태에 전두엽 출혈로 헛소리하며 난동을 피우는
환자는 고사하고 술에 취한 그의 부인은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며 '돈을 뜯어 먹는 악귀'라고 손가락질 하고 모든 검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입원장이 발부된 후 원무과에서 현재까지 소요된 백만원 가량의 진료비용 이야기를 듣고 흥분한 모양이었다. 돈보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고 백번 강조했고, 이후 교수님까지 와서 중환자실 입원치료, 수술 가능성, 퇴원 불가 등에 대해 수십번 강조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후 찾아온 환자의 딸은 더 가관이었다. 음주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 어머니와 똑같은 말만 내뱉는 그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짜증나기도 또 한편으로
환자가 불쌍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 새벽의 난리는 4시가 다 되서야 잠잠해졌다. 그리고 아침 7시 f/u CT 촬영을 강력히
거부하던 그 보호자는 DAMA(자의 퇴원서)를 작성하고 환자를 집으로 데려갔다. 집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코웃음을 치고
환자를 부축하며 응급실을 나서는 그 보호자를 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다시금 회의감이 들었다. 늦은 새벽까지 자기네들 때문에 잠도 못자고 졸린
눈을 부비며 모니터를 쳐다보고 기다리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고사하고 돈이나 쳐먹는 나쁜 놈들이라니. 진료비로 지불한 백만원 돈이 전부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이런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서 의사 행세하며 밤을 꼴딱 세우고 있어야 하다니, 진짜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고 안쓰러워졌다.


정확히 12시간 후, 그 환자는 의식 저하를 주소로 응급실을 재방문했다. 이번에는 말이 좀 통하는 여동생이
데려온 모양이었는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보호자를 나무라는 우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뇌 CT에는 이전보다 출혈량이
늘어있었고, 부종도 상당해보였다. 즉각 뇌압하강제를 사용하고 중환자실로 입원조치했다. 환자 상태가 이리도 악화될 때까지 방치한 보호자에게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채 아침과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돌아섰다.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간혹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뭐, 나라고 딱히 대안은 없다. 부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이 담당 의사의 말을 조금만 더 믿고 신중하게 판단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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