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가깝게 지내는 아는 지인에게서 전화 한통이 왔다. 장인어른이 이번에 비소세포폐암 3기를 진단 받았는데, 어떻게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겠느냐는 전화였다. 비소세포폐암 3기는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어떻게 적절하게 조합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느냐가 관건이고, 논문마다 가이드라인마다 그 치료법들에 논란이 많다. 특히 림프절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치료방법과 치료 성적이 다르고, 결과 해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각 병원마다 성향이 달라서 치료 방법과 치료 순서에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비소세포폐암 3기의 치료법을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모여서 충분한 토론을 하고, 환자의 개별 상황에 맞게 치료 방침을 정하는 일이다. 이를 소위 다학제적 접근 (multi disciplinary approach) 이라고 하는데, 이런 다학제적 치료는 이미 요즘 암환자의 진료의 대세가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병원 폐암 진료는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병리과 등 관련 과들이 함께 모여 팀을 꾸리고, 유기적인 협진으로 하고 있다. 이미 교과서적인 치료법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굳이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으나, 새로 진단된 환자나, 특히 애매한 상황인 경우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관련과 전문의가 모여서 토론을 하며 어떤 치료법이 가장 최선인지를 정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병원 폐암 협진팀은 매일 점심 1시에 모여서 협진외래를 연다.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교수님 등 관련과 전문의들이 한데 모여 CT, PET 등을 함께 검토하며 치료계획을 짠다.



< 폐암 협진팀 진료 모습>
 
 그날도 오후 1시에 협진이 있었다. 환자분은 아직 다른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셔서 보호자분만 CT와 병리검사 기록지 등을 가지고 오전에 내 외래로 오라고 하여서, 우선 일차적으로 소견들을 검토하였다. 그쪽 병원 소견대로 비소세포폐암 3기초 인 것은 확실한 데, 70세 고령에 당뇨, 고혈압, 간경화, 간암 등 합병증이 있어 어떤 치료를 어떤 순서로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협진을 요청하였고, 보호자분은 다른 급한일이 있다하여서 먼저 보내드렸다. 12시 40분쯤 오전 외래가 끝나서 점심도 못먹고 협진회의에 들어갔다.

우리병원 협진팀은 종격동 림프절 평가를 어떻게 하고, 방사선치료, 수술, 항암치료를 어떤 순서로 할지 함께 논의했고, 결국 항암치료를 먼저해서 암세포를 줄여 놓고 수술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 거라 결론을 내렸다. 특히 흉부외과와 방사선 종양학과의 의견을 직접 들으면서 토론을 하니 결론이 명쾌해서 좋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협진회의를 나오면서 문득 수납 생각이 났다. 보호자분은 이미 그쪽병원으로 가셨는데, 수납을 하러 먼길 다시 오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평소 신세진 것이 많았던 가까운 지인이라, 그냥 내가 수납을 했다. CT 판독료 등 그래도 비용이 좀 나올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수납할 금액을 보고는 나는 깜짝 놀랐다.

수납 기계에는 “납부할 금액: 800원” 이라고 적혀있었다.
협진료 800원이라….

물론 암환자 중증등록이 되어서 5%만 내도 되어서 800원이지 실제 진료비는 16000원이었다. 15200원은 보험에서 내주고 환자 본인이 내는 돈은 800원이었다. 그래도 800원은 왠지 씁쓸했다.

이날 협진 때 호흡기내과의사 2명, 종양내과의사 2명, 방사선종양학과의사 1명, 핵의학과의사 1명, 흉부외과의사 1명, 영상의학과의사 1명 전담간호사1명이 모였으니 의사만 8명에 간호사가 1명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하며 치료 계획을 짰었다. 의사 8명이서 800원을 벌었으니, 각자 100원씩 번 셈이었다.

만일 협진을 안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호흡기내과에서 폐암을 확진하고 수술이 가능할지 환자를 흉부외과로 보냈다가, 흉부외과에서는 수술전에 항암치료를 하는 것은 어떤지 물어보려 종양내과로 보냈다가, 종양내과에서는 항암치료만 하는 것보다 항암방사선을 같이 치료하면 어떨지 의견을 구하려 방사선 종양학과에 보내고, 방사선종양학과에서는 수술전에 방사선용량을 얼마나 주면 수술하기에 부담이 없을지 문의하러 다시 흉부외과로 보냈다가, 최종적으로는 흉부외과에서 항암방사선치료는 부담스러우니 그냥 항암치료를 먼저하고 수술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몇날 며칠에 걸쳐서 환자를 네다섯번 걸음 시켜서 각과의견을 물어봐야 16000원 초진료를 4~5번 받을 수 있으니 병원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다. 이렇게 네다섯번 발걸음해야 치료 계획이 잡히는 환자를 여러과의사가 한군데에 모여서 협진을 함으로써 한번에 치료 계획이 잡히게 되니, 환자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병원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일이다.

 현재의 의료보험 체계는 협진이라는 것을 별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어서 그렇다. 여러 명이 모여 협진을 하건, 의사 한명이 진료를 하던 비용은 똑같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환자가 편한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기존의 관행대로 환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돈을 조금이라도 더 청구하는 것이 중요한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협진료 100원.

나는 여기에서 우리나라 의료비가 비싸네 싸네 하는 해묵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의료비가 싸다고 푸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무상의료를 논하고 싶은 것도 전혀 아닐 뿐더러  나는 협진을 통해서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가치의 차이이다.

비록 남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100원의 가치를 부여해 놓았지만,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이 100원짜리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일이기에 100원짜리 결정이 100만원짜리 PET검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환자를 여러 번 오게 해서 불편하게 만드는 것보다 이런 협진을 통해 환자분의 불편을 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남들이 부여해 놓은 가치 체계와 내가 부여한 가치체계가 다를 때가 많이 있다. 이런때에는 남들이 부여해놓은 가치가 과연 공정한 가치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돈으로 평가 되지 않는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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