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Fr, 꽁꽁 닫혀있는 안과 바깥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의 크기. 볼펜보다 얇은 그 길을 통해 우리 환자들은 오늘도 가느다란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다. 살짝 빠지기만 하더라도 의식에 장애가 생기고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그 싸구려 관은 환자에게 있어서만큼은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머리 안에 발생한 출혈을 밖으로 빼내어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생명의 선인 셈이다. 그래서 그 길을 지키기 위해 중환자실이라는 답답한 공간 속에서 손발을 묶어둔 채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다. 그 생명줄을 사이에 두고 저항하는 환자와 지키려는 의료진 간의 사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억제대와 진정제로 가능한 최대한의 안정을 시키려 애써도 이미 자기제어 능력을 부분적으로 상실한 환자를 매어두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도 신경외과 중환자실에는 적지않은 환자가 이 얇디 얇은 생명줄에 의존하여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버티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제대로 배액되지 않으면, 출혈이 늘고 붓기가 심해져 한순간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이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 역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본다. 그들에게 있어 생명줄은 단지 이뿐만이 아니다. 코를 통해 밥이들어가는 18 Fr의 밥줄 역시 그들에게 삶의 활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생명줄이다. 정맥을 통해 들어가는 주사제, 진통제, 항경련제, 항생제 등 역시 앓고 있는 그들을 살리기 위한 생명줄 중 하나다. 아직도 의학이라는 미지의 세계 앞에 한없이 작은 우리는 그나마 그 줄을 통해서라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가끔은 그 작은 줄에 의존하며 매달려있는 스스로가 한없이 한심하고 작아보일 때가 있지만, 또 그것이 현재로써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니 나름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얼마전 새벽에 응급수술을 했던 한 젊은 여자 역시 머리로 들어가는 관 세개에 그녀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 반혼수 상태로 내원했던 그녀에게 남은 희망은 오로지 그 세개의 관 뿐이었고, 매일 적정량의 출혈 및 뇌척수액이 배액되면서 조금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순간 그 관의 배액이 중단되었고, 이내 상태는 악화되어 지금은 혼수상태로 오로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관이 배액이 되지 않았던 그 30여분의 시간동안 그녀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어 버린 것이었다. 촬영한 CT는 이미 중증 뇌부종과 그로인한 뇌경색, 뇌허탈이 진행되어 있었고 결국 우리가 중환자실 앞에서 울며 기다리는 보호자에게 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은 '어렵겠습니다' 뿐이었다. 그까짓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관이 무에라고 사람의 명운까지 결정 짓는 것일까. 아직도 넓디 넓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극소수에 불과한 거대한 의학이라는 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요즘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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