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것은 그 구성원에게는 휴식처, 음식, 경제적 지지의 제공처이며, 가족 구성원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정서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최소단위의 사회집단이다. 또한 스트레스, 질병으로부터의 안전기지, 보호막으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때로는 역시 사회집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질병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의 구성원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회-문화의 적응과 전승이 이루어 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족의 중요성은 살면서 수십번 듣게 되고, 또한 백번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가족에게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그것이 바로 가족력이다.

 가족력은 일종의 습관 에너지다. 물론 그 전달의 형태에 따라 남자에게만 혹은 여자에게만 발현되는 질환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구성원이 유전인자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고혈압의 경우, 생활습관도 중요한 영향인자지만 부모 모두 정상일 때 자녀가 고혈압일 확률은 4%에 불과하지만 부모 중 한쪽이 고혈압이면 그 발생 확률이 30%, 양쪽 모두면 50%까지 올라가게 된다. 당뇨 역시 한쪽 부모가 앓고 있을 때 자식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15~20% 높아지고, 양쪽 부모 모두일 때 30~40%까지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만병의 원인이 된다는 고혈압과 당뇨의 발병확률만 보더라도 가족력은 정말 유일하게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싶지 않는 유산 중 하나인 셈이다.

 특히 신경외과 영역에서는 가족력은 가난보다도 피하고 싶은 대물림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두통을 주소로 응급실을 내원했던 한 환자는 검사결과 아지랑이처럼 비정상적인 혈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야모야병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상태였다. 모야모야는 일본어에서 기인한 말로 내경동맥 말단부에 협착 ,폐색의 양상이 나타나는 질환 폐쇄성 뇌혈관질환의 일종으로 목 앞쪽을 통해 뇌로 들어가 뇌의 약 80%정도에 피를 공급하는 내경동맥 끝부분이 막혀서 뇌기저부에 아지랑이처럼 수많은 가는 비정상 혈관이 만들어지는 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갑자기 살아 남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보니 혈관벽이 정상혈관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약하게 되며 따라서 쉽게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 환자의 기구한 사연을 듣다보니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 중 어머니가 모야모야, 그리고 오빠 역시 모야모야로 두 사람 중 어머니는 뇌출혈 때문에 세상을 떠났고, 오빠는 혼수상태로 요양병원에서 입원가료 중이라고 했다. 또한 그 오빠의 아들 역시 모야모야 병으로 어린 나이에 뇌혈관을 심어주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두통이 지속되어 조카가 수술을 받았던 교수님이 있는 우리 병원을 찾아왔고, 결과적으로 그녀 역시 모야모야병을 진단 받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두세달 걸러 모자가 나란히 고혈압성 뇌출혈로 수술받은 가족도 있었고, 뇌동맥류 파열로 뇌출혈이 발생하여 입원치료를 받는 중이었던 한 남자의 어머니 역시 간병 도중 갑작스런 의식소실을 보였는데, 검사 결과 아들과 마찬가지인 뇌동맥류 파열을 진단받은 적도 있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였다. 5월 가정의 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가족의 화목과 단합의 중요성은 수십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중대한 의학적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는 가족력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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