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피임약이 화두에 오르면서 ‘사전피임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경구피임약이 전문약으로 분류된 식약청의 의약품재분류안 때문에 말들이 많다. 트위터과 인터넷에서 나도는 얘기들은 '성관계시 의사한테 다 허락을 받고 하라는 얘기인가'라는 비아냥거림이 주된 것인데, 병원에 가면 자신의 신상정보를 다 공개하게 되는 셈이고 또한 진료비라는 추가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된다.

난 피임약 전문가는 아니지만 갑작스런 경구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은 불편과 비용을 가중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일반의 저항이 꽤 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임약을 처방받을 때 매번은 아니더라도 한번 정도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는 본다. 일반 여성이 피임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을까? 약국에서 피임약을 살 때 복약지도를 받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자신에게 맞는 피임약을 선택할 수 있을까? 피임법에 대한 상담을 프라이버시 침해나 의료비용 증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은 ‘여성들이 왜 자기 몸을 그렇게 돌보지 않을까’였다. 피임약을 피임 목적으로 복용하든, 여드름과 월경주기 조절을 위해 복용하든 간에 적절한 약의 선택, 약의 복용법과 부작용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여성들은 이같은 교육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그런 걸 다 찾아보고 공부하고 복용하고 있는 것일까? 

피임약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며 자신에게 적당한 약의 선택을 위해선 한번 정도는 산부인과에 가보는 게 좋겠다. 난 월경주기 조절을 위해 지난달에 복용을 시작했는데 에스트로겐함량이 젤 낮은 쪽에 속하는 머x론을 먹는다. (에스트라디올 20mcg 함유) 그 약을 선택하려고 피임약 리뷰논문을 공부하고 약국에 약을 사러갔다. 그러나 조만간 산부인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처방을 받으려고 한다. 나이가 많은지라 정맥혈전증의 위험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X론은 정맥혈전증의 위험이 다른 프로게스테론에 비해 증가한다고 보고된 데소게스트렐 성분이 들어있다. 아무래도 나보단 그쪽을 더 공부한 선생님과 상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참고로 에스트로겐 함량이 높은 경우 관상동맥질환 및 뇌졸중의위험이 커진다. 과거 이런 위험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된 경구피임제는 대부분 50mcg 이상의 에스트로겐 (에스트라디올)이 함유된 약제였다고 한다. 요즘 나오는 약들은 에스트로겐 함량이 대부분 20-30mcg 정도이다. (그러나 저함량의 에스트로겐에서도 심근경색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코호트연구에서는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위험이 30mcg의 경우 1.3-2.3배,  20mcg의 경우 0.9 - 1.7배 증가시킨다고 보고하였다. 아무래도 에스트로겐의 함량이 많을수록 위험도가 커지는 경향은 맞는 것 같다. 한편 대부분 경구피임제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복합제인데 프로게스테론에는 남성호르몬과 코티코이드로서의 작용도 있어서 몸무게 증가와 여드름, 다모증 등의 부작용이 있다. 2세대 프로게스테론인 레보노르게스트렐이 들어있는 미니X라 같은 경우 이런 부작용이 더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을 줄인 3세대 프로게스테론인 제스토덴, 데소게스트렐, 드로스피레논의 경우 (마이X라, 머X론, 야X, 야X민) 피임약의 치명적 부작용 중 하나인 정맥혈전증의 위험이 더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35세 이상의 여성이거나 담배를 피우는 경우에는 특히 경구피임제로 인한 정맥혈전증의 위험에 대해 숙지하고 복용해야 하며, 경구피임제 복용 시에는 금연이 필수이다. 약제마다 장단점이 있으니 선택해서 복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은 전문가가 아닌 타과의사의 입장에서 가볍게 공부한 내용이고, 사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보는 ‘피임연구회’의 홈페이지(http://www.piim.or.kr)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솔직히 이 이상 알아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직접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해보는 편이 낫겠다. 사실 피임약의 위험과 효과에 대한 연구는 정말 많다. 이런 걸 다 공부하고 해석하기란 전문가가 아니면 어렵다. 게다가 진료실에서의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의사인 나조차도 리뷰논문 좀 읽었다고 피임약을 스스로 알아서 복용하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는 것이고, 피임약 복용 시에도 꼭 한번정도는 상담을 받는 것이 현명한 여성의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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