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 장난을 치다 침대에서 떨어진 후 응급실을 찾아온 일곱 살 꼬마 숙녀. 철부지 같았던 그 아이의 응석 때문에 응급실에서도 주사를 놓느라 혼났었는데, 이틀이 지난 오늘은 살만한 모양이었는지 뽀로로를 보면서 깔깔대며 웃느라 아픈 것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아이를 가진 부모 마음이 다 똑같은지라 대개는 본인들이 아프면 최대한 입원료가 저렴한 다인실을 달라 아우성이지만, 자식들이 아프면 어떻게 서든 좋은 병실에 좋은 약, 좋은 치료를 주고픈 것이다. 단지 치료라고 해봐야 누워있는 것이 전부지만 하루 병실료가 40만~50만원에 육박하는 원내 VIP 전용 1인실을 고집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꼬마 숙녀와 그 아이의 여동생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치원 안 가서 좋다며 깔깔거린다.
 
꼬마 숙녀의 머리에 생긴 작은 문제 때문에 아빠, 엄마는 이래저래 고생이 많다. 걱정이 많았던지 원래 계획했던 8월의 가족 휴가를 앞당겨 아이의 입원기간에 맞추었고, 엄마는 짐을 꾸려 입원실에 작은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 꼬마 숙녀의 병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컴퓨터까지 가져 온 아빠는 한켠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었고, 엄마는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 위에서 열심히 얼음을 갈아서 팥빙수를 만들고 있었다. 구석에는 작은 고무 풀장이 마련됐고, 꼬마 숙녀의 여동생은 그 안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꼬마 숙녀는 그 모습이 부러웠는지 계속 칭얼대며 엄마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무더운 여름 병원으로 피서를 떠나 온 한 가족의 모습이었지, 아파서 입원한 한 꼬마 숙녀의 병실은 아닌 것 같아보였다.

꼬마 숙녀의 엄마는 아침 회진을 온 나에게 팥빙수 좀 드시고 가라며 앉으라고 권했고, 전날 과음으로 해롱거리던 정신을 번쩍 깨우고 싶어 거절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잘 갈린 얼음과 함께 팥빙수를 한 그릇 대접받았다. 그간에 병실에서 많은 음식과 주전부리를 얻어먹어 봤지만 팥빙수는, 특히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팥빙수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나와 한두 살 정도 차이나는 꼬마 숙녀의 부모와 함께 병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점심에는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온 도시락을 먹을 거라며, 그 자리에 의사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다는 말도 전해왔다. 농으로 고기라도 구워먹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더니, 아이의 부모는 준비하겠다며 당장이라도 준비할 기세였다.

일 년차 시절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새벽 홈쇼핑에서 광고했던 불판을 고기 광고로 착각하고 주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 원내 취사는 금지된 터라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부라면 상상만 했던 그 꿈을 실현시켜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어휴,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 년차 도주 한 달 째 병원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별 헛생각이 다 드나보다. 여하튼 그 가족의 병실 여름휴가가 꼬마 숙녀의 쾌차와 함께 무사하고 즐겁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내 여름휴가는 언제쯤, 흑흑.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