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중 한 장면.

최근 할리우드의 소위 블록버스터라는 것을 보면 절반 이상이 SF 장르인 듯하다. SF 장르는 우리나라에도 인기가 높아서 상당수의 영화가 크게 성공을 한다. 물론, SF에도 비교적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검증이 잘 이뤄진 것들과 다소 황당한 설정을 특수효과로 버무린 것들로 나눠볼 수 있겠지만, 이런 SF 영화들이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SF의 역사는 영화보다는 소설이 원조다. 최초의 SF소설이 무엇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셜리(Mary Shelley)의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부터 수많은 SF소설들이 미국에서는 발표됐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이나 사람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견인차 역할을 SF소설이나 영화 등이 했다고 하면 과장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이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대성공을 거둔 <주라기 공원>의 경우, 한 다국적 회사에서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호박의 모기에서 추출한 공룡 DNA를 바탕으로 현생 파충류를 활용해 공룡 테마파크를 만들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가정을 함으로써 (비록 이런 시도가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오게 되지만), 흥행과 함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다국적 회사의 단순한 고용자로서 일을 했다. 특히 이 영화는 마이클 크라이튼이라는 의학을 전공한 작가의 정교한 가정들이 극적인 요소를 더했는데, 공룡을 만들 때 lysine 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결핍되게 해서 암컷 공룡이 알을 낳을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했지만, 자연의 힘은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변종을 만들어 내는 탄탄한 과학적 배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과학자들이나 과학의 힘을 이용한 기업이 대자연과 생명에 대해 무모한 조작을 감행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불확실성과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인지하게 만들었다. 현재 유전공학은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이용된다. GMO라고 불리는 다양한 유전자변형작물은 물론이고,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쥐가 없다면 의학의 발전도 지체될 것이며, 상당수의 의약품들도 이제는 유전공학의 기술로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정도가 과한 유전공학에 대한 맹신과 상업적인 탐욕은 SF영화들이 얘기했던 무수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 만약 SF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런 얘기의 가능성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면, 상업적인 이해관계와 윤리적 의식이 결여된 일부 과학자들로 인해 미래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 있는 그런 시도가 스스럼없이 행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탐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동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의 미래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다양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자는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로도 잘 알려진 SF소설의 거장 필립 K. 딕(Philip K. Dick)이다. 이 영화는 감각적인 연출과 뛰어난 영상, 그리고 정교한 세트와 설정에 있어 근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특히 홍채를 인식해 신원을 알아내는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안구이식을 받고,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거미처럼 생긴 로봇이 수술 직후의 주인공을 추적해서 검사하는 장면, 그리고 멀티터치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등으로 묘사된 도시의 모습 등은 실제로 현재의 IT기술 발전을 미리 보여준 장면으로 널리 회자된다.

최근에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나노기술은 어떤가? 모두들 나노기술의 장밋빛 미래와 인간이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난제들을 풀어낼 결정적인 기술로 추앙하고 있지만, 여기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던지는 인물들도 있다. 코넬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고, 탄소 나노튜브 기술의 대가인 폴 맥(Paul McEuen) 교수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2011년 발매된 SF소설 <스파이럴(Spiral)>을 통해 나노기술이 곰팡이나 생물학적 무기에 결합되어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기술보다 무서운 대량살상무기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최근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구입하여 영화로도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보통 자신들의 학문적 열정은 높지만 대중과의 소통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다양한 스토리는 실제로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쉽게 풀어낸 이야기는 사회학이나 인문학, 윤리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 그리고 일반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가져올 희망찬 이야기와 혹시 있을 수 있는 커다란 부작용을 인지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망찬 미래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 수 있고, 기업이나 일반대중들도 여기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으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미리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와 미디어의 힘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런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좀 더 많이 나와 줘야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SF소설과 영화가 아닌가 싶다. 스토리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과학기술자들이 많이들 SF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를 통해 미래 세대들에게 과학기술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이 과학기술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다 멋진 인류의 미래를 위해 힘을 쓸 수 있는 꿈을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설득력 있는 스토리들은 실제로 그것을 꿈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실체화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예측이나 스토리로 생각되었던 것이 사람들을 움직여 미래를 바꾸는 힘으로 동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과학입국 정책과 일본 등에서 수입되었던 "마징가Z"이하 무수한 로봇과 과학기술 만화영화들은 "로보트 태권V"와 같은 우리나라 만화영화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 이상으로 그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이끌면서 수십 년 전의 과학기술후진국을 현재와 같은 과학기술강국으로 부상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아이들과 학생들, 젊은이들에게도 그런 미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물론 "과학기술자들의 중장기적인 삶의 안정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말에 분명히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토리텔러들과 과학기술을 문화의 차원에서 발전시키는 노력이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자리의 창출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과학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문제에 일정정도 해답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크리스틴 피터슨(Christine Peterson)이 남긴 유명한 명언을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미래의 일을 바라볼 때에 만약 그것이 SF 소설같이 느껴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그것이 SF 소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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