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사몽간에 한 주를 보냈다. 1년차의 부재와 2년차의 휴가란 악재 속에서 대형마트 묶음 상품도 아니고 1+2+3 년차의 일을 동시에 하려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압박감이 몰려왔다. 특히나 금요일 프라이머리 콜을 받으면서 연달아 4개의 수술에 투입되어 인간의 한계에 정점을 찍기도 했는데, 결국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션트수술 환자의 배를 봉합하다가 잠이 들어버리기도 했다.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며 겨우 마지막 한 땀까지 봉합을 마치고 수술방 테크니션에게 환자 정리를 부탁한 후, 수술복을 입은 채로 수술방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려 수술방 식구들 모두가 놀라기도 했다. 나 역시도 생애 이런 변고를 단 한 차례도 겪어보지 않은 터라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80명에 이르는 환자, 병실, 응급실, 중환자실, 여기에 수술방까지 3년차가 아니었다면 필시 도망가고도 남았을 로딩을 견뎌낸 스스로가 대견하다. 오늘 오전 9시 2년차 복귀를 기점으로 오프 나갔던 치프가 돌아오면서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오프를 종일 잠자는 침대 속의 왕자가 되어 보내고 난 후 일어나보니 오후 5시. 지난 한 주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전화벨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중환자실 환자들의 상태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지만,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이런 여유와 허무함이 어색하기도 하다. 1층부터 11층까지 전 병동에서 전화가 십분 마다 밀려오는 느낌,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이다. 한번은 새벽 2시에 환자 밥 먹어도 되냐고 묻는 전화에 너무 짜증나서 간호사에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바쁜 생활 탓에 피해도 꽤 입었다. 수술방을 전전하다보니 끼니를 거르는 일도 잦았고, 끼니라고 해봐야 대부분 라면이나 3분 요리였다. 초진, 준비부터 수술까지 홀로 전부 해야 했던 지난 수요일, 워낙 서두르는 통에 인턴 선생이 소변줄 잠그는 일을 잊어버렸고 덕분에 정말 좋아하는 바지와 신발이 소변 범벅이 돼 버렸다. 바쁜 통에 아직 빨지도 못해서 혹여나 바지에 소변이 찌들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하루 종일 병원 생활만 하느라 에어컨에 찌들어 있던 찰나 바깥세상에 나갔다 더운 날씨에 혼쭐이 나고, 그 덕에 감기까지 걸리고 말았다. 헌데 또 어떻게 이를 알고 일전에 입원했던 한 환자가 감기 어서 나으라며 편지와 홍삼, 견과류를 선물로 보내줘 감동의 눈물에 젖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 새벽, 마지막 프라이머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생한 인턴 선생과 함께 의국에 모여서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꼭 여자 에페 단체와 축구 경기를 관람하자며 함께 의국에서 잠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응급실 환자 러시 때문에 본의 아니게 깨어서 아침 6시까지 모든 경기를 전부 관람하고 말았다. 다행히 4강 진출에 성공하여 피 같은 신경외과 3년차의 소중한 시간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에게 감사드리며, 하루가 지나면 다시 본연의 3년차의 위치로 돌아갈 나 역시도 알 수 없는 이 우울감에서 벗어나 파이팅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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