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부로 새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응급의료기관이 모든 진료과목에 당직 전문의를 두도록 한 제도가 시행되었다. 바뀐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 올 경우 응급실 근무의사가 1차 진료를 한 뒤 필요시 해당 과의 당직 전문의에게 진료 요청을 하게 되며, 해당 전문의는 응급실에 직접 와서 진료를 해야 한다. 전화를 통한 원격진료는 인정되지 않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시 소속 병원은 과태료를 물게 되고, 해당 전문의는 최대 2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각 과의 전문의에게 신속히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며 반기고 있다.
 
 그러나 응급실 내 중증환자 체류시간 및 수술 대기시간 단축에 큰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의도와는 달리, 세세한 기준이나 준비 없이 시행한 규칙 때문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어디까지가 응급환자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을뿐더러 ‘필요시’ 전문의를 요청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법을 피하기 위해 전문의를 아예 호출하지 않고 응급실 근무의사 선에서 환자를 보거나,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시키는 등의 편법도 행해지고 있다.

 바뀐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이하 응당법)으로 인한 문제는, 재정난과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 병원에 당직업무까지 가중시킴으로써 전문의들의 사직을 유도하게 되고,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 병원들은 한 과에 과장 한명만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365일 응급실 근무를 위해 대기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들 병원들은 인력을 더 확보하거나, 인력을 확보할 재정이 없다면 응급의료기관 지정을 포기하고 반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응급 진료 수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불투명하며, 이 같은 사항이 정해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의 인력난과 재정난의 악화를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응당법의 문제는 비단 중소 병원만의 것은 아니다. 대학병원 등의 대형병원에서도 전문의가 당직을 서게 되면 전공의의 수련기회를 박탈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전공의들의 수많은 역할 중에 하나는 응급실 초진을 보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전공의는 응급 환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응급실에 전문의가 있다면 전공의 보다는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를 원하는 환자가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는 전공의의 진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공의는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대학병원의 위계질서 상 전공의의 당직 업무 부담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런 업무부담의 가중은 응급환자가 많은 특정 과의 전공의 기피현상까지 이어질 우려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신속한 응급진료에 대한 취지는 이해 할 만 하나 이번 응당법의 도입은 복잡한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이해부족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법적인 부담만 지울 것이 아니라 응급의료분야에 투자를 늘려 부족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야간에만 일할 수 있는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법 적용 대상을 일부 권역 응급의료센터에 한정하여 시행하는 등의 단계적 수정도 가능하다. 복지부는 이같이 현실에 맞는 응급의료법을 단계적으로 개선, 도입해야 할 것이다.

기고자 : 경희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김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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