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유방암 클리닉 외래에서 웃음이 터집니다.
암 치료 받으면서 웃을 일이 있냐고요? 그럼요.
삶은 순간이에요.
그 찰나가 즐겁고 웃음 나는 순간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원래 탁솔이나 탁소텔이 우울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약을 맞으면 여기 저기 몸이 아프고 서너 번 주사를 맞으면 몸이 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몸도 무거워요. 그리고 항암제를 맞고 1주일 정도 지나면 무기력감도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울하기 십상이에요. 
 
사실 외래 진료실 문 열고 들어오시는 순간, 느낄 수 있어요.
'아, 우리 환자가 마음이 좀 힘드시구나. 우울감이 온 것 같다.'


“우울하세요?”


쉽게 묻지는 못합니다. 그건 왠지 환자의 프라이버시 같아서요.


제가 “우울하세요?” 이렇게 묻는다는 건, 제 마음 속으로 꽤 걱정이 될 때 입 밖으로 내서 질문을 하는 겁니다. 제가 그 질문을 던지면 환자들이 참고 있던 눈물을 뚝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우리 진료방에서는 크리넥스 화장지도 준비돼 있죠. 많이 울고 가시니까요.)
 
그런 우울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빵 터지는 유머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환자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저는 처방을 합니다.


“돈 좀 쓰세요. 아끼지 말고 팍팍”
 
환자가 울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팍팍’이라는 말에.
 
“평소에 못 가본 럭셔리한 레스토랑도 가서 미친 척 비싼 스테이크도 사 드시고요, 백화점 가서 비싼 브랜드로 옷도 한 벌 사세요. 화장품도 좋은 걸로 하나 사서 피부 관리 좀 하시구요. 한 번에 5만원 넘는 마사지도 받아보세요. 돈 싸 짊어지고 갈건가요. 좀 없어도 그냥 좀 쓰세요.” 
 
남편에게 당부합니다.
 
“나중에 이사 갈 때 냉장고에 갇혀 버림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좀 투자하세요. 항암치료 매 사이클 지날 때마다 목걸이 귀걸이 같은 거 좋은 놈으로 하나 선물하세요. 마음 필요 없어요. 물질이 최고에요.”
 
환자들은 냉장고에 버릴 거라는 거, 물질이 최고라는 말에 빙그레 웃음 짓습니다. 그런 말 하는 거, 그런 마음 갖는 거 너무 속물적이라 우리가 억누르고 사는 마음입니다. 너무 없어 보이는 거, 남에게 아쉬운 말 하는 거, 그렇게 안 하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게 우리 자존심입니다.


치료받으며 힘든 몸과 마음, 자존심마저 잃지 않으려 애쓰는 환자들. 그 마음 미리 헤아려 그냥 좀 뜻 좀 받아주고, 그냥 좀 울라고 놔두고, 그냥 좀 씩씩하지 않은 모습 보여도 못 본척하고, 그냥 생색내지 말고 방청소 설거지 하면서 일도 좀 덜어주고, 그렇게 드러나지 않게 환자 마음을 배려해 줄 때 환자가 빙그레 웃음 지으며 힘내서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힘들어 하는 환자들이 많아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많이 쓰여서  초저녁부터 녹초가 됩니다. 의사도 감정노동이 많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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