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간호사의 비명이 들렸다.


“때렸어요. 때리는 걸 제가 봤어요.”


환자의 얼굴을 보니 왼쪽 눈두덩이 검푸르게 퉁퉁 부어 있었다. 몇 번이나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치매 할머니였다. 자꾸 일어나려고 하자 그걸 말리던 아들이 주먹으로 할머니 얼굴을 마구 내리친 것이다.


아들은 어딘가 모자라보였다. 나이는 마흔 남짓이었으나, 하는 행동이 어설펐고 대화할 때에도 엉뚱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래도 별일 없으려니 했는데 결국 사고가 터져버렸다. TV에서 보던 가정폭력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휙 지나갔다.


나는 아들을 바라봤다.


“경찰에 신고해야겠네요.”


경찰이라는 말에 아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때린 게 아니라 자꾸 일어나기에 눕히려다가 그런 거다’라며 횡설수설했다. 당황하는 걸 보니 심성이 악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다행히 골절은 없었다. 보호자인 할아버지께 연락해 간병하실 분을 바꿔달라고 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그들의 삶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지적장애 아들의 조합은 어떻게 해도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난동을 부려 아들을 힘들게 만드는 어머니, 그걸 못 참고 어머니를 주먹으로 때리는 아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능력이 없는 가난. 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진다. 



내가 만약 할머니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들에게 얻어맞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그에 비하면 난 행복한 거야.’


새삼스럽게 감사함을 느꼈다.


다음날, 할머니를 찾아가보니 붓기가 조금 가라앉았지만 시퍼런 멍은 여전했다. 안쓰러웠다.


‘못난 아들 때문에 할머니가 고생하는구나.’


나는 눈을 가리키며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배시시 웃었다.


“안 아퍼유.”


할머니의 천연덕스러운 웃음에 허를 찔렸다. 할머니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눈이 시퍼렇게 멍든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따라 웃어버렸다.


어쩌면 할머니에게서 눈물 한 방울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못난 아들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으니 너무 서럽다며 흐느끼고, 내가 할머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해 이 슬픈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이 내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배시시 웃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행복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들이 잘난 사람만, 어머니가 현명한 사람만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재산이 많아야 행복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래. 무슨 상관이랴. 자식이 지적장애가 있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든 그게 행복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게 말하자면, 사지 멀쩡한 사람들은 매일매일 행복에 겨워 살아가야 할 텐데 이 세상엔 불행해하는 사람들 천지가 아니던가. 애초에 행복이든 불행이든 필요충분조건은 없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그 속에서 찾아가야 하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못난 아들에게 얻어맞아 눈이 밤탱이가 됐어도, 허허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으리으리한 집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똑똑한 아들이 있어도 불행하지 말란 법은 없다.


병실을 나서며 내 생각이 얕았음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웃음은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나는 그렇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던가. 겉만 번지르르한 삶을 사는 건 아니었을까. 고개가 숙여지는 겸연쩍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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