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는 중소도시인 청주에 있는 충북의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리고 저는 청주에서 초등·중등·고등학교를 나왔고, 그 이후로도 계속 청주에 살고 있습니다. 친가·외가 친척들도 청주·청원·조치원 등 인근에 대부분 거주하고 처가도 충북 진천입니다.


이런 이야기로 왜 시작을 하냐 하면,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사시고 교육을 받으시고 청주로 '내려오신' 교수님들께서는 간과하시는 것이 있어 보여서입니다.

바로 ‘동네사람의 중요함 또는 무서움’입니다.

흔히들 대도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하죠? 그래서 각종 범죄나 청소년 문제 등을 거론하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구가 많으면 섞이기 때문에 악연이 겹쳐서 만나는 확률도 줄다보니, 그냥 막 대해도 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작은 동네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다리 건너면 친구 아버지, 아버지 친구, 사촌형 장인, 이런 식으로 얽히고 혀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익히 보면서 자라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도 대학교 안에서나 맘대로 피우지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초등·중등·고등학교 적에 선생님을 만나기 일쑤였고, 그러면 담배를 버려야하니 아깝기도 하니까요. 살다보면 시비가 붙는 경우도 있는데, 한나절 지나면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이런 지역사회 구조의 장점은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면 크게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조심하게 되니 큰 분란이 적게 생기고, 미리미리 화해를 하게 되죠. 잘못이 가려지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겠군요. 지역에 카르텔이 형성되면 안 좋은 비리가 생기는 단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란 것이 장점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첫째, 대도시에 살고 대도시의 대학병원에서 교육을 받으신 의사들은 환자와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서로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이죠. 둘째, 의사간에도 나중에 서로 볼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의사-환자간의 익명성이 보장되니, 문제가 생기면 중재를 대부분 법적으로 가겠지만, 지역사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꼭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아도, 지역에서 그 의사가 쌓아온 평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마련입니다. 누가 봐도 평판이 좋은 의사라면, 환자나 보호자도 긍정적인 면을 자연히 듣게 되고, 여러 문제나 불만에서 순기능을 해줍니다. 또한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때로는 중재자가 되기도 합니다. 평판이 나쁘다면 중간에 아는 사람이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환자나 보호자를 볼 때, 그래도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 4시에도 친구 아버지가 응급실에 오신다면 예의 때문에 돌봐드려야 하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한두 번 큰 코를 다치는 것이 아니니 익명의 환자가 익명이 아닌 것이죠. 하지만 대도시는 이럴 확률이 극히 낮죠? 이런 고민이나 경험을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셋째, 의사와 의사간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근처에 개원하거나 취직하는 사람이 1년에 1명이나 있을까요? 졸업하면 끝이거나 레지던트 수련을 받으면, 대부분 '빠이~ 빠이~'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는 제 아래에서 수련을 받는 전공의이지만, 내년에는 우리 대학병원 100m 앞에 개원한 원장님이 되고, 1km 떨어진 종합병원의 과장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가 중요한 고객이지만, 지역사회의 의사만큼 더 큰 고객은 없습니다. 평판이나 환자 전원에서 막강하게 우월적 지위에 있지요. 그런데 그 대학병원의 동문은 어떠한 위치일 것 같습니까? 그 대학병원을 나온 동네의사가 '제가 그 대학병원 나왔는데, 거기 가지 마세요.'라고 하면 지역사회의 평판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런 악담이 실제로 진료능력 때문일 수도 있고, 전공의와 학생 시절 당했던 무시와 착취 때문일 수도 있지만, 환자나 대중이 그것을 알 수는 없지요.

서울의 대형병원은 병원의 브랜드 네임 때문에 가지만, 지역사회의 대학병원은 신뢰관계 때문에 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의와 타협해서, 의사로서 자질 없는 사람을 달래서 졸업시키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친절을 이야기하시기 전에 백만분의 일이라도 지역사회에서 동문(특히 지금 전공의)의 위치와 역할이 어떠한지 진심으로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첨언하면, 병원에 같이 근무하는 간호사나 직원들이 평가하는 의사의 평판이 지역사회에서 어떠할지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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