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순환기 내과는 수많은 여자 인턴 중 대대로 미모의 여자인턴만 뽑는지라, 혹자들은 순환기 내과(Department of Cardiology) 인턴을 일컬어 "미스 카디오"라 한다. 다만 그간 매의 눈으로 미스 카디오를 선발했던 순환기내과일지라도 인간은 가끔씩 실수를 하는 법이라, 전혀 미스 카디오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내가 9월의 미스 카디오에 선출되는 황당한 영광을 누리게 됐다. 이는 필시, 대전에서 포토샵 가장 잘 하는 사진관이라고 간판을 내건 사진관 주인아저씨의 능력과 넘쳐나는 환자로 심신이 지친 내과 의국장 선생님의 판단 미스로 인해 유발된 사태일 것이라 사료된다. 그러나 예전에 다소 쌩뚱 맞은 사람이 미스코리아로 선발되어 여론의 비난을 받았으나 미스코리아의 칭호를 유지한 것과 같이 나 역시 지금은 미스카디오로 불리고 있다.

매일아침 병원본관 5층-4층-지하1층-6층-14층-다시 6층으로 완성되는 컨퍼런스 회진준비 코스를 달리고, 내과치고는 그다지 많지 않은 정규 드레싱을 하고 한숨을 돌릴 때면, 아침 일찍 혈관조영실에서 시술을 받은 환자 중 지혈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손가락, 경우에 따라서 주먹으로, 최악의 경우는 양 손으로 펄떡펄떡 뛰며 피를 배출하는 손목이나 대퇴동맥을 힘껏 눌러 지혈하고 나면 어느덧 내 손과 주먹이 얼얼해 진다. 한번 할 때 기본 30분 이상은 꾹 눌러야 한다. 어떤 날은 도합 6시간 가까이 병동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지혈을 했다. 그 뿐이랴, 응급실에 순환기내과 환자가 왔을 때 초스피드로 portable echo를 응급실로 내려줘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어떤 개념 없는 부서에서, 우리 과가 아침 컨퍼런스에 쓰는 회의실을 오후에 빌려 쓰면서 책상이나 의자 배열을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해 놓고 퇴근한 덕분에 아침이면 나 혼자 그 많은 책상과 의자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것도 단 10분 만에 말이다. 하루는 새벽에 회의실에 도착해 보니 책상과 의자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떤 멘붕 부서에서 몽땅 다른 회의실로 옮겨놓고 제 위치를 시켜놓지 않은 것이다. 다른 인턴들의 도움을 받아 빛의 속도로 책상과 의자를 날라야만 했다. 그 문제의 무 개념 부서를 찾아내서 따지려고 했으나 그날따라 유독 바빠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매일같이 힘을 쓰고 다니니, 이제는 내 팔뚝의 근육이 나날이 우람해져 간다. 한 환자의 대퇴동맥을 압박하며 지혈하는 도중  드러난 내 팔의 근육을 보고 한 보호자는 팔이 정말로 튼튼해 보인다며 의사는 역시 체력이 중요하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며 산삼음료수를 가운 주머니 속에 넣어 주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힘쓰는 일상 속에 미스 카디오는 어느덧 미스터카디오로 진화하였다. 이제 미스카디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미스터카디오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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