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아픈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엑스레이에서 관절염 소견은 심하지 않았고 이리저리 만져봐도 인대 손상은 아닌데 자꾸만 아프다고 한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 사이 건너방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목소리와 아이의 거친 울음소리로 미루어보았을 때 아픈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온 엄마임이 틀림없었다. 아이가 무얼 삼켰는데 목에 걸렸다며 빨리 조치해달라 울고 불고 난리다. 입원실과 응급실 없이 의사 둘이서 진료하는 의원이라지만 그래도 권역에서는 꽤나 소문난 병원이니 종종 급한 환자도 찾아오겠거니 했다. 오너가 잘 알아서 조치하겠지 하며 다시 내 앞에 앉아있는 환자에게로 오로지 정신을 집중했다. 헌데 '김원장' 하며 오너가 진료실 사이 문을 열어 젖힌 후 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진료가 한창일 때 두 진료실 사이 문이 열리고 오너가 나를 찾는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디스크성 환자에게 선택적 신경근 차단술(루트 블락)이 필요한 경우나 머리 수술 기왕력, 뇌경색의증 등 신경외과적 지식이 필요한 환자가 찾아왔을 경우 등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오너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큰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진료실 사이의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아이의 상태를 봐달라는 말에 더더욱 놀랐다. 함께 온 엄마 말로는 사과를 먹다가 목에 걸린 것 같다고 했는데 오너가 아무리 시도해도 사과 덩어리가 나오질 않았다. 나라고 방법이 있겠는가 싶어 다가가 아이 상태를 확인했더니, 미친 듯이 울다가 호흡조차 버거워하며 거의 아사 직전에 이르고 있었다. 인투베이션 키트나 라링고도 없는 상황에서 더 시간을 지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 판단하여 간단한 썩션과 산소공급 시행 후 곧바로 이차병원 전원을 결정했다. 워낙 다급했던터라 목과 몸에 차폐복을 둘고 있던 것도 잊은 채 두 손으로 아이를 안고 냅다 달렸다. 그 사이 차량이 준비되었고, 신호-중앙선은 커녕 거의 역주행에 가까운 신기로 근처 병원을 향해 달렸다. 헌데 가는 와중에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한차례 구토 이후 얼굴이 점점 파래지더니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것이었다. 성인 환자라면 얼마든지 경험했을 상황이었지만 내 품에 안겨 있었던 것은 십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자그마한 아이인지라 적지않게 당황했다. 곧바로 인공호흡과 함께 두 손가락으로 CPR을 시행했다. 내 입술과 아이의 입술 사이즈의 격차가 컸지만 어떻게 든 살리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의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이차병원 응급실 정문에 당도했고 재빨리 차에서 내려 다시금 아이를 안고 그 안으로 뛰어 들었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라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상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응급 기도 삽관이 필요한 상태임을 알렸지만 할 수가 없단다. 낮이라 응급의학과 과장 대신 내과 선생이 그리고 그 아래 가정의학과 레지던트가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없으니 일단 산소 공급을 하고 소아과나 마취과 선생을 콜하겠단다. 하지만 모니터에 뜬 산소포화도는 13%,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빙의하고 손을 걷어부쳤다. 소아용 인투베이션 키트를 포함 라인과 모니터, 스테로이드 투여 등을 지시하고 바삐 움직였다. 온 몸에 걸치고 있던 차폐복의 무게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한 손으로는 튜브가 빠지지 않도록 잡고 있었고, 또 다른 한손은 앰부를 짜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기에 기도 삽관 확인을 위해 청진을 부탁했다. 모니터에서 산소포화도는 93%를 넘나들고 있었다. 헌데 이 의사들 말이 잘 모르겠단다. 그래서 아까 요청했던 포터블(이동형) 엑스레이를 좀 빨리 불러달라고 했다. 헌데 이 역시도 올 생각을 안한다. 예전 같았으면 몇번이고 소리를 질렀을 상황이었다. 이런 극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잘 버티고 있었다. 다행히 산소 포화도가 오르고 아이가 다시금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하도 움직여대는 통에 간호사들이 라인을 잡느라 고전하자 센트럴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큰 병원에 소아용 센트럴 키트가 없단다. 한 숨이 나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아과, 마취과 등이 내려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래도 상황이 안정되었으니 외부인은 손을 떼는 것이 맞을거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이 모여 꺼낸 이야기의 결론은 곧바로 광주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보호자에게 아이 상태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이 엄마는 함께 온 나만 한량없이 바라보고 있다. 괜시리 화가 났다. 하지만 참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밖에 서서 기다린 통에 차가워진 손을 잡아주며 걱정말라는 이야기, 괜찮을거라는 이야기 등 나조차 확신이 서질 않았던 응원과 격려를 아이의 엄마에게 보냈다. 이후 아이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싶어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오후 진료 내내 아이의 상태가 어떨지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저녁에 걸려온 전화에 따르면 다행히 아이의 상태는 안정되었고, 폐에도 특별한 이상이 없어 내일 즈음 관을 빼고 다시금 이곳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병원 동료들은 한 아이의 생명을 살렸다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썩 기쁘지만은 않았다. 내 부모, 내 가족이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면 어떨까. 그저 아무 것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맥없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불행이 내게도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무사한 회복은 감사하고 기뻤지만 적어도 내가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여수, 거기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병원에서 이런 응급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조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불안하고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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