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올해의 트렌드 중 하나는
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을 위로한다고 하는
각종 메시지가 범람했다는 점입니다

'힐링'으로 대표되는 여러가지 문화들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일들 말이지요ㅎ

이렇게 시대가 어려울 때에는 항상
사람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들이 쏟아져나오기 마련이지요
'긍정의 힘', '긍정적으로 사고하라' 같은 메시지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그 외에도
힘든 노동 끝에 땀을 훔치며
'그래도 참 보람찼어 아하하'
라며 미소지어 보이는 노동자의 모습이라던가..

[나는 일을 사랑해. 일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지 라던가..]

[힘든 노동을 통해 나는 더욱 발전하고 강해진다!! 라던가...]
 
결국
"그래 난 가난하지만 그래도 햄볶해!"
"힘든 만큼 큰 보상이 따르게 될 거야"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선전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어떠세요?

왠지 위로(?)가 되시나요ㅎㅎ

이런 생각들을 심리학 용어로 '상보적인 믿음'이라고 해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또는 '부자지만 불행하다'
'힘들지만 보람차다' 같은 메시지들이지요.

물론 살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런 믿음들은 어느 정도 필요하곤 합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희망을 가지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은
이러한 믿음들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며
체제정당화(system justification)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kay & Jost, 2003)

많은 사람들이 유레없는 어려움에 처해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 라는 불만이 고조되는 때일수록

기존의 구조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던 사람들(권력자들)은
문제를 그냥 덮고 계속해서 '이 체제는 아무 문제도 없어. 좋은거야'라고 할 필요가 있겠지요.

즉,
"너 지금 가난하고 힘들지?? 그래도 생각해 봐봐 부자라고 행복한 건 아니야~
너가 부자인 나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어.
그리고 생각해봐 젊었을 때 고생할 수 있는 건 청춘의 특권 아니니? (왠지 익숙하지요ㅎㅎ)
좋게 좋게 생각해" (뿌잉뿌잉)
라고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화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ㅎ

사람들로 하여금
"아 글쿠나 고생은 청춘의 특권이구나. 가난해도 난 행복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리면
사회 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더라도
별로 여기에 대한 불평이나 문제제기를 안 하게 만들 수 있잖아요 ;)

정말 그러한지 실험을 해 봄니다.

사람들에게 '가난/부자 X 행복/불행'한 가상 인물의 시나리오를 읽게합니다.

버전1. 가난하지만 행복 (상보적)
버전2. 가난하고 불행
버전3. 부자이고 행복
버전4. 부자지만 불행 (상보적)


4가지 시나리오를 서로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 읽게 한 후
다음과 같은 문항에 답하게 합니다.
(1 = 매우 동의함, ~ 9 = 전혀 동의하지 않음)

"사회는 공정하게 굴러가고 있다"
"현재의 정치체제는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 만한 나라이다"
"사회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가 공정하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된다"

즉 지금의 정치, 사회, 경제 체제가 얼마나 옳은지.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은지에 관한 문항들이지요

결과를 볼까요

화내니까 청춘이다?ㅋㅋㅋㅋ


가로축은 조건(어떤 시나리오를 읽었느냐)이고
세로축은 각 시나리오를 읽은 후 사람들이 응답한 '체제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결과를 보면
다른 시나리오보다 '가난하지만 행복', '부자지만 불행' 같은
'상보적 메시지'가 들어간 시나리오를 읽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 구조에는 어떤 문제도 없어'라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 보이지요.

이 외에 가난하지만 정직함, 부자지만 부패함 같은 메시지를 읽혀도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상보적인 메시지를 접하고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사회 정의' 같은 개념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이러한 상보적인 믿음은
사회가 어려울 때 권력자들이 쓰기 좋은 카드인 것 같지 않나요?ㅎ

사람들의 분노도 잠재우면서 체제도 유지할 수 있는 일석 이조의 효과적인 카드(?!)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시대의 아픈 청춘들을 위로하겠다는 여러 힐링 서적이나 메시지들이 나올 때
씁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책들이 '의식적으로' 체제정당화를 목적으로 삼은 건 아니겠지만요ㅎ)

뭔가 화를 내서라도 바꿔야만 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그냥 위로받고 잊는 것 보다는 화를 내는 게 더 적응적이기도 한데
너무 쉽게 화를 누그러뜨리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ㅎ

'화'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에너지(각성수준)이 높은 감정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기도 하거든요.


폭압에 시달리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레볼루션!!!!"이라며 일어나서 역사를 바꾼 사례들이라던가(?)ㅎㅎ

지금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문제들에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분명 있다면
개인적 차원에서 화를 누그러뜨리고 넘어가는 것 보다
화를 확 내버리는 게 개개인과 사회를 위해서 더 좋은 방향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지금 외쳐야 하는 것은 '힐링'이 아니라
'더더욱 화를 내자' = 이 에너지를 문제 해결의 원동력으로 삼자가 되겠지요 ;)

화내니까 청춘이다?ㅋㅋㅋㅋ

(물론 그렇다고 .. 부적응적인 방식으로 화를 내서는 안되겠지만요ㅎ)

우선 일단은 다가오는 대선!
뭔가 삶이 잘 안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거기에서 느껴지는 짜증남의 에너지를 투표하러 갈 에너지로 바꿔봅시다ㅎㅎ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