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없어져야 할 인턴
안과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내 일과는 새벽에 일어나서 40개에 달하는 외래 방에 그날의 수술스케줄표를 붙이고 연구소에서 보온통에 액체질소를 채우고 수술방에 배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후 외래 차트 대출, 다른파트에서는 간호조무사들이 하는 "병동 약국가서 약타오기", 복사, 프린트하기, 수술방에 급하게 약품이나 장비 배달하기, 수술방에 교수님 드실 사탕 신속 배달하기, 저녁때 수술방 질소통 수거해서 연구소에 배달하기, 전공의 선생님들 대신 도서관에서 논문이나 책 빌려오기 등 도대체 내가 의사면허 따고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가는 일들을 하루종일 쉬지 않고 해야만 했다.

한 달동안 소독약 한번 써본 적 없으며, 어떤 선생님은 툭하면 인턴보고 책 빌려오라고 시키고(인턴 이름으로) 나중에 연체에 연체료 미납까지 하기 일쑤였다. 일을 하다가 가끔씩 이런 잡일을 시킨다면 거부감이 없었겠지만 정말로 1달내내 "잡일"말고 하는 일이 없었다. 차라리 가운말고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일하는 것이 더 나았다. 어깨 넘어로 무언가를 배울 기회조차 없는 1달이었다. 진료실이나 수술방에 들어갈 기회 조차 없었으니까. 내 허망한 한달이여......오죽하면 그 다음달 타과에서 당직비 제대로 못받고 수술방 죽돌이 신세가 되었을 가 더 행복했을 까.

#2. 만족했던 인턴생활
지방의 한 브랜치 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몇 몇과에만 전공의가 있고, 대부분의 과가 과장님+인턴+의료기사로 이어지는 단촐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도 많았고 상당히 Dependent한 주치의이기는 했지만 책을 찾아보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는 등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나날들이었다. 예를 들어 "흡인성 폐렴= 항생제 쓰고 별짓(?)을 다 해도 예후 안좋음"으로 끝나는 교과서 적인 지식이 있다면

"삼킴장애가 있는 재활의학과 환자-게으른 간병인이 가래를 제때 뽑아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밥을 먹이고나니 열이남-청진소리 이상함, 산소포화도가 떨어짐-일단 ABGA, 산소 주고 chest PA,....로 찍으려니 이 사람 bed ridden이니까 chest AP로 찍자-과장님께 노티하고(사고치면 안되고 과장님도 환자 상태 알아야 하니까) 감염내과 컨설트(일부 항생제는 승인 받아야 쓸 수 있음, 그리고 항생제 종류가 너무 많음...)- 항생제 투여, 이후 그 환자 때문에 날라오는 수많은 콜을 해결하기 위해 책도 뒤져본다" 라는 적용이 가능헌 곳이 이 곳이었다.

아..물론 붙잡고 친절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줄 사람은 없으니 스스로 찾아보고 모르면 찾아가서 물어봐야 한다는 다소 귀찮은 옵션(?)이 있지만 이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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