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늘 정지해있지 않고 뭔가의 이벤트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래서 간사하다고 하는걸까?
환자들의 마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변한다. 굳세게 마음먹고 열심히 치료하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허약해보여 또 자책한다. 그게 간사한 걸까? 당연한거다.

객관적 사실로 알려진 것들 병기와 예후, 치료법과 그 효과 및 부작용, 그리고 통계적인 생존기간 그런 정보들은 나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크게 의미가 없다.

나는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기필코 좋은 성적은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통계적인 수치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자리잡고 있다. 잊으려고 해도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다. 언제듯 깨어질 것 같이 여린 마음이다.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았지만 그 첫 치료의 반응이 통계적인 평균보다 훨씬 좋았다.
항암치료 여섯번을 하고 나서, 그 후로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쉬고 있다.
치료를 쉬면서 경과관찰만 한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아직도 폐와 뼈에는 전이된 병변이 관찰되고 있다. 몇년째 비슷하게 보인다.
더 나빠지지도 않고 더 좋아지지도 않고.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멀쩡하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도 다 나서 멋진 웨이브를 넣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탁솔 부작용도 다 좋아져서 이제 손발저림 증상도 없다.
직장으로 복귀해서 워킹맘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치료를 쉬자면 쉬고, 검사하자면 검사하고
의사가 시키는대로 묵묵히 3년 이상의 시간을 잘 견디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치료하고 일생생활을 꾸려가던 그녀도
병의 안정기가 길어지니 또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는게 아닌가 싶다.
 
 
잘 지내시죠?
네.
이번에 찍은 사진도 괜찮네요. 계속 쉽시다.
네.
진통제 아직도 드시나요?
네.
 
진통제 얘기를 꺼내니 갑자기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는 아직 간간히 진통제를 먹는다. 가끔 몸이 너무 무겁고 기운이 빠질 때 진통제를 먹으면 좋아진다고 한다. 진통제 종류도 약한 편이고 먹는 양도 많지 않아 본인이 조절하면서 드시게 하고 있다.

"나는 피곤하고 힘들어도 티 안낼려고 진통제 먹어가면서 일 하는데...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집안 일도 다 하고... 그런데 이제 식구들이 나를 환자 취급을 안하는 건지... 엊그제는 진통제 안 먹고 청소하면서 힘들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그냥 진통제 빨리 먹으라고만 하지 일 도와줄 생각을 안하는 거에요. 내가 힘들다고 하는 말을 듣기 싫은건지, 그냥 진통제 먹으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 서운해서..."
 
그녀가 말문을 맺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CT를 찍고 피검사를 하면서 병원을 다니고 있다.
직장 눈치 보면서 병원 다니고 병이 다시 나빠질까봐 마음 졸이고 지난 3년 동안 병이 나빠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마음이 계속 편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몸도 마음도 변한다.
전이암 환자니까 그동안 그 어떤 것도 병에 우선시 되지 않았다. 가끔 치통이 있어도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몇달 전부터 잇몸이 시큰거리고 이도 흔들리는 것 같아서 뼈주사를 중단하고 치과 진료를 보게 했다. 치과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그녀의 엑스레이를 보니, 치과 치료를 위해서도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그녀는 직장 문제로 아직 치과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암 치료도 그렇고한참 후 나타나는 치료의 합병증과 후유증도 그렇고 암과 상관없이 나타나는 만성질환도 그렇고 그리고 굳게 마음을 다잡은 줄 알았는데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함과 우울함도 그렇고 시간의 궤적을 따라 변하는 환자의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따라가야 하는 것 같다. CT가 괜찮다고 다 괜찮은게 아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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