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들의 주 업무(?)중 하나는 소독, 외국말로는 "드레싱(Dressing) 일 것이다. 크게는 수술부위 소독부터 욕창, 각종 카테터 삽입부위, 조직검사한 곳까지 조금이라도 "피"가 날 수 있는 시술을 하고 나면 해당부위 소독은 어김없이 인턴의 몫이 된다.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주로 Dressing이라는 단어를 쓰며 똑같은 "의료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역에 따라 "드레싱" 혹은 "뜨레씽" "드레씽" "뚜레씽" 이라는 다양한 단어를 쓴다.

물론 수술부위 소독은 외과계열파트에서는 해당 주치의를 맡고 있는 전공의들이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독을 하면서 수술부위를 확인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인 듯 하다. 나 역시 지난달 외과 주치의를 맡았기 때문에 아침 회진 전 수술부위 소독을 직접 했고 시간이 지나 실밥을 빼고 드레인을 잡아빼면서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끼고는 했다.

비자신체검사실 인턴을 하고 있는 요즘, 카운터 파트의 인턴이 휴가를 가면서 1주일동안 호스피스 병동의 인턴일을 떠안아버리게 되었다. 오전에 정규 드레싱을 하다보면, 사람들마다 "드레싱"을 의미하는 단어를 다르게 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게 참 오묘하다.

대화예시)

#0. 자/벌레잡자
주로 유딩이하의 꼬마 환자들에게 의사나 꼬마 환자들의 보호자들이 주로 쓰는 단어.

대화예시)
카 : 어머니. 애기 소독좀 할께요. 00아~~ 무릎 아야한곳 닦자!
엄: 00아. 선생님이 여기 벌레잡아준대.
애기 : 으아아아아아앙!!!

#1. 약발라요
이미 한국인의 평균 수명에 가까운 연세의 어르신 환자분들께 "소독" "드레싱"이라는 말을 쓰면 "그게 뭐여~" 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이럴 때는 "할아버지 약발라드릴께요" "빨간약이요" "옥도징끼 발라요" 하면 의외로 대화가 쉽다.

대화예시)
카 : 할아버지. 어깨 소독좀 할께요
할 : 소?? 그게 뭐여??
카 : 어깨에 약 바른다고요!!
할 : 약?? 무슨 약??
카 : 빨간약이요!!
할 : 빨간약?? 그거 옥도징끼?? 그려그려 얼렁 혀~
(미안해요 할아버지... 사실 알코올도 쓸꺼에요)

#2. 소독
초딩부터 노년층까지 교양있는 사람들에게 널리쓰이는 현대서울말.

#3. 드레싱
주로 병원생활 오래하신 짬밥높은 간병사나 혹은 언어습득능력이 뛰어난 20~30대 젊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쓰는 단어. 오전에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들 마음에 안든다고 도도하게 스테이션으로 와서 "여기 000호 환자 드레싱좀 해주세요"라고 보호자가 이야기하면 활활 불타며 일하는 인턴의 뱃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개인적인 편견일지 모르나 "드레싱"이라는 단어를 즐겨쓰는 간병인일수록 드레싱할 때 간섭이 심하며 과다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추가적인 드레싱의 요구가많다. (무조건 많이 붙인다고 좋은게 아닌데 말이다.)

#4. 치료
듣기만 해도 황송한 단어다. 주로 나이 지긋하신 간병사나 비슷한 연배의 환자 보호자들이 쓰는 단어다. c-line dressing 등 구운 김에 참기름만 바를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을 무한반복해야하는터라 진절머리가 난 인턴들이 "지겨워"라는 단어를 얼굴에 써붙이고 병실에 난입해도 "환자분, 여기 의사선생님이 치료하러 왔어요."라며 우리가 작업하기 좋게 환자분들 자세를 바꿔주시니 병원 카스트제도의 심연에서 허우적 대는 우리는 황송함과 감사함에 괜히 좀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정말 간단한 행위의 격식을 높이는 단어다.

**뱀다리 : 이제 곧 인턴이 될 본4 학생들에게 드레싱의 기본을 알려주자면, 이전에 해 놓은 것고 똑같이 해 놓는 것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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