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항암요법연구회 완화분과의 심포지엄이 있었다.
 
완화 의료 (palliative care)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수술 등 치료적 목적으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이외에도 암환자의 증상 및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제로 연구하고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문 분야이다.

예를 들면, 항암치료를 할 때 항구토제를 어떻게 쓸 것인지,
항암치료 중 호중구감소증이 왔을 때 외래에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원칙은 무엇인지,
암성 통증을 보다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약을 어떻게 쓰고 환자를 교육해야 하는지,
치료 중 정서적 불안이나 우울증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 삶의 질은 어떻게 변화하고 보존할 수 있는지,
치료 말기에 이르면 어느 시점에 치료를 중단할 것인지 등등을 그 주제로 한다.
무궁무진한 주제가 해결책을 기다리는 숙제로 남아있는 영역이다.
 
용어상 암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가 아닌 보조적인 요법 혹은 지지 치료 (supportive care) 라고 불리워지기도 하는 영역이다. 이런 지원이 잘 되어야 환자들이 자신이 원래 받아야 하는 주 치료를 잘 받고 힘든 치료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다. 때론 과도한 검사와 치료를 받는 것이 자기에게 무모하다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마음의 외로움과 불안함도 잘 이겨낼 수 있다.

신약 임상연구도 중요하지만 이런 지지 요법과 완화 의료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영역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 학회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종양내과 선생님들이 모여 주제별 발표도 하고, 향후 우리에게 필요한 연구주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진 셈이다. 나도 오전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통증 조절 연구를 발표하는 기회를 얻었다.

점심 시간 후 오후 세션이 시작되기 전에 '환자는 의사에게 이런 것을 바란다'는 주제로 탤런트 김자옥씨가 발표를 하셨다.

김자옥씨는 대장암으로 수술 후 항암방사선치료를 받았고, 3년만에 폐로 전이되어 전이된 곳에 대해 수술을 받으신
후 다시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피부며 외모며 말씀하시는게 내가 TV에서 본 공주님 모습 그대로시다. 


자기가 처음으로 암을 진단받고 수술받던 날,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했던 생각, 재발을 진단받던 날,
폐 수술 후 통증이 심해 절망했던 시간, 케모포트에 항암제를 연결한 채 촬영장에 나가 연기생활을 유지하고,
다른 암으로 치료하는 후배 연기자에게 선배 항암치료자로서 용기와 기운을 준 이야기.
 
주어진 짧은 시간에 환자의 입장에서 가감없이 그리고 의사들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환자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섭섭했던 의사의 말 한마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연기자라 그런걸까? 말씀도 아주 잘 하시고, 그 자리에 모인 의사들로 하여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부감없이, 그러나 충분히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정말 그녀는 씩씩하고 놀라운 환자이며,의사에게 가르침을 주는 훌륭한 환자였다.

그녀는 여러 과 의사를 만나고 치료를 받으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그녀는 의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의사선생님은 하느님의 뜻을 대신하는 천사같은 사람이에요. 하느님의 뜻이 의사 선생님의 손길,
말 한마디를 통해 저에게 내려오는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따를 거에요.
그러니까 천사로서 어떻게 행동하셔야 겠어요?

그녀의 센스있는 조크에 우리 모두 빵터졌다. 그녀처럼 조리있게, 재미나게 말씀을 잘 하시지는 않아도
나의 진료실을 찾는 모든 환자에게 그만의 스토리가 있다.

치료를 받으며 속상하고 힘들었던 순간,
의사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절망했던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그를 믿으며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스토리.

나는 환자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섬세하게 귀를 기울이는 의사일까?
학생들이 만든 힐링 페이퍼에 들어가서 환자들의 여과없는 목소리를 들어본다.
조심, 또 조심,
유리같은 환자들의 마음에 금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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