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었나 헤아려 봤더니 2010년이더군요. 한강의 소설 두 권이었죠. 무려 2년 반 동안 단 한 권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시를 읽느냐,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책을 멀리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강의 소설 이전에도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요. 한 때 소설을 써보겠다고 했던 적도 있었는데 제게 소설은 이승우, 김소진, 윤대녕과 함께 오랜 기간 잊혀진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외국에 나가 있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겠습니다만 말이죠.

아무튼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연달아서 두 권을 말입니다. 한 권은 김애란의 <두근 두근 내 인생>, 그 다음 책은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였습니다. 두 책 모두 젊은 여성 작가의 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읽었던 한강도 젊은 여성 작가였네요.) 그리고  두 권 모두 동아대 이국환 교수님의 추천작이었습니다. 예전에 부산 MBC에서 라디오를 진행하실 때는 1주일에 한 권씩 추천을 받았는데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군요.


작년 부산 원북원운동의 강력한 추천도서였던 <두근 두근 내 인생>을 막 집어들었을 때 김애란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제 대학시절엔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언제나 베스트셀러였지요. 재수생시절, 학원 수학 선생님이 추천하신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종로서적에서 선채로 다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80년생 작가가 온갖 문학상을 섭렵하고 최연소 이상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니 그 필력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들고 5분 만에 낄낄거리기 시작했고 책을 다 읽고는, 문학에 문외한이지만, 왜 김애란, 김애란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밝구나!"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들었던 첫번째 감상입니다. 소위 386의 비장함도, X세대인지 뭔지하는 90년대 학번들의 자의식 과잉도 없는 밝음이 읽혔습니다. 그렇다고 철없는 천진난만함이나 시시덕거림은 전혀 아닌, 건강함이라고나 할까요? <두근 두근 내 인생>은 아주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인데 건강함을 느꼈다니 그게 작가의 힘인 듯 합니다. 책을 읽자 마자 주저하지 않고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를 주문했네요.

이어서 읽었던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의 분위기는 <두근 두근 내 인생>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 방송국 구성작가인 K가 어떤 잡지에서 본 브뤼셀의 탈북자 L의 삶의 뒤쫓으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진정한(?) 작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 와중에 한국에 두고 온 사람들과 로기완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는다는 내용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 두 소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근 두근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주인공이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벌어지는 일인데 바로 그 TV 프로그램의 구성작가가 <로기완을 만났다>의 주인공일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로기완을 만났다>는 L이라는 탈북자가 로기완이 되고 김작가가 거꾸로 K가 되는 두가지 이야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소설입니다. 타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가 타자가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언제나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는 과학만 생각하다가 올해는 계속 '스토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 책들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이 성경을 이야기로 풀어낸 <더 스토리>(션 글래딩, 죠이선교회)라는 기독교 서적이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소설을 읽으며 인생에 대해서 생각한 경험이 오랜만이라 새로웠고 좋은 소설을 읽어서 즐거웠고 예전 독서의 기쁨을 다시 찾아서 반가왔습니다. 이제 <달려라, 아비>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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