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 관한 질문을 받다 보면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기생충 때문일까?’다. 물론 장기적인 장내 기생충 감염이 영양결핍이나 철분, 비타민 B12 같은 특정 영양소 결핍을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배고픔’은 조금 다른 문제다. 회충 등 장내 기생충 감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감염성 질환의 주요 증상 중 하나는 식욕 부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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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기생충을 이겨내려면 많은 열량이 필요한 것 아니던가? 말라리아의 경우에는 고열이 치솟는 급성기 단계에서 하루 5000칼로리까지 소모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식욕 부진이라니. 이런 때일수록 더 잘 먹어줘야 하는게 아닐까.

감염성 질환에 걸렸을 때 왜 신체는 식욕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반응하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명확히 풀리지 않았다. 신체 손상의 초기 단계에 분비되는 사이토카인이 식욕부진을 초래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신체 내 사용 가능한 열량을 제한하는 것이 감염성 질환의 확산을 막는데 정확히 어떻게 기여하는지, 그리고 이런 반응이 진화적으로 어떤 이득을 가지는지는 모호한 가설들만 많을 뿐이다. 감염 초기에 음식물을 통해 추가적인 독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책이라는 가설도 있고, 식욕부진으로 열량이 부족해 이동이나 움직임이 제한되면 그만큼 몸이 열을 내는데 더 많은 열량을 소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 열량을 제한하면 그만큼 기생충에 돌아가는 열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때문에 이미 체내에 들어온 기생충이 숙주보다 더 큰 피해를 보는지는 명확히 가려내기 힘들다.

최근 제기된 가설 중 하나는 식욕 부진이 기생충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라 숙주 자신의 세포에 돌아가는 몫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1   숙주의 세포에 제공되는 열량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게 되면 세포는 세포자살(apoptosis)에 훨씬 취약해지게 된다. Eaton이 말라리아에 감염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2   비타민E 결핍이 세포의 방어력을 낮추기 때문에 제한된 영양소를 섭취한 쥐의 경우, 말라리아에 감염된 세포가 면역체계에 의해 쉽게 제거되어 그만큼 낮은 기생충량을 보였다. 감염 당시에는 적혈구 파괴로 심한 빈혈을 앓았지만 장기적으로 생존 기간은 더 길었다. 식물의 경우에도 박테리아에 감염되거나 외상이 있을 경우 주변 세포를 사멸시켜 감염의 확산을 막고 피해를 조기에 제한시키는 행동을 보인다.

물론 이 가설이 모든 감염성 질환에 통용되지는 않는다. 구충 감염으로는 장내에 출혈이 일어나 식욕부진과 철결핍성 빈혈이 일어나지만, 동시에 흙을 먹는 이식증(pica)를 보이기도 한다. 또 세포자살을 통한 기생충의 억제는 말라리아 같은 세포 내 기생충에는 효과를 보이겠으나 다른 다세포 기생충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염성 질환에 걸렸을 때 밥을 잘 먹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금식을 하는 것이 좋을까. 기생충과 식욕. 그 사이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많이 남아있다.

*간단요약: 배고프다고 배에 기생충 들어있는건 아니에요. 오히려 없을 가능성이 높을지도.

[참고문헌]
1. Why infection-induced anorexia? The case for
enhanced apoptosis of infected cells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306987799909039

2. Eaton J. W., Eckman J. R., Berger E., Jacob H. S. Suppression
of malaria by oxidant-sensitive host erythrocytes. Nature 1976; 264: 758760.

9:13 am 22 Januar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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